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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서재근의 Biz이코노미] LG·SK 배터리 분쟁…日·中 '어부지리'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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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업계에서는 양사가 원만한 합의에 나서 K-배터리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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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주역, 배터리 분쟁 멈추고 선의 경쟁해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전기차 배터리는 '4차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에 이어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대표적 분야로 꼽힌다.

LG화학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중국의 CATL을 제치고 1위(중국 시장 제외)에 올랐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각각 3위와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을 놓고 보더라도 이들 3사가 차지하는 글로벌 비중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지난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한 중국의 일방적인 무역 보복으로 수년 동안 현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당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이들 3사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선제 투자로 'K배터리'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신화 속 주인공들이 국내외를 무대로 양보 없는 분쟁을 이어가 재계의 우려를 자아낸다. 사유는 '영업비밀 침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7년부터 2년여 동안 SK이노베이션이 100여 명의 자사 배터리 인력과 영업비밀을 탈취했다며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소송전의 결과는 ITC가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와 관련 부품에 대해 수입금지 10년 이라는 중징계를 내리면서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판정승으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국내 소송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25일에는 경찰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2019년 SK이노베이션 본사와 서산공장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미 ITC의 중징계를 근거로 국내 소송전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승기를 잡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지만, 정작 업계의 관심사는 '승패'가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배터리 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경우 'K-배터리'가 선점한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글로벌 경쟁사들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부작용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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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지난 25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을 탈취한 의혹을 받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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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과 공고한 파트너십 기반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다. 최근 중국 CATL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3차 배터리 공급 물량을 따내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 역시 이 같은 시장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각 회사가 갖춘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브랜드 이미지다. 시장에서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을 두고 '승패 여부'보다 '결과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ITC의 판단은 따지고 보면 간결명료하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가 명백하고 죄질이 매우 나빠 이로 인해 LG에너지솔루션이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ITC는 조만간 최종판결 내용이 모두 담긴 퍼블릭 버전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판결문 원본이 공개되면, 그간 언론 등을 통해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일련의 모든 과정이 고객사와 경쟁사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라도 양사는 협상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앞서 소송을 제기한 배경과 관련해 "경쟁사의 사업을 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침해된 영업비밀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지식재산권을 지속해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적절한 보상안을 전제로 합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SK이노베이션 측도 달라진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일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비토권(거부권) 행사가 소송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이 전통적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엄중한 잣대를 적용해 왔다는 점, ITC가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계약을 맺은 전기차 제조사들에 수입 유예 기간을 줬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거부권 행사 실현가능성이 높지않다는 게 중론이다.

'기술탈취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뚜렷한 해법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기존 파트너십도 무너질 수 있다. ITC도 판결문에서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수주 계약을 체결한 포드와 폭스바겐에 각각 4년과 2년 동안 제한적으로 수입을 허용하면서 해당 기간 이들이 다른 배터리 공급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부지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무명조개 속살을 먹으려는 도요새와 부리를 놓아주지 않는 무명조개가 결국엔 모두 어부에게 잡혀갔듯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배터리 대표 기업의 기 싸움은 결국 글로벌 경쟁사들을 도와줄 뿐이다. 현명한 해결을 기대한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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