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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거여 ‘검수완박’ 밀어붙이기에…윤석열 “국민 피해” 내세워 여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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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檢 수사권 박탈’ 작심 비판 왜

尹 “수사·기소 분리 안돼” 신념 강조

檢 힘빼기 내부 반발 기류 합쳐 분출

檢 “부패 대응역량 떨어져 국민 다쳐”

尹, 3일 대구고검 방문서 입장 밝힐 듯

법조계, 尹 총장 발언 공감 중론

“수사권 조정·공수처 출범 얼마 안 돼

형사사법제 틀 바꾸려는 무리한 입법”

세계일보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수사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는 별도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등 여권을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달 박범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발언을 자제해 온 윤 총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부딪칠 당시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윤 총장 발언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에 대한 검찰 내부 기류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이 윤 총장 발언에 공식 대응을 삼가는 것도 4·7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인화성을 우려해서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선 윤 총장이 ‘국민 관심’을 호소한 점을 들어 여론전에 시동을 건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인 포석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윤 총장의 성격을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평소 자처해 온 헌법주의에 충실한 행동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윤 총장 “중수청, 직을 걸고 막겠다”

윤 총장은 이날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에 대해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여권의 중수청 입법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권에서는 임기만료 4개월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을 들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의 강공으로 검찰의 결속력이 강해진 데다가 윤 총장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상태다. 검사들이 결집해서 여권에 반기를 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윤 총장은 이미 검찰 내부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기소와 공소유지만 맡으라는 건 검찰개혁을 넘어 해체하자는 주장”이라며 “국민에게 피해가 갈 것이란 위기감에서 윤 총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범죄 수법이 날로 치밀해지고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직접 수사 경험 없이 서류만 넘겨받고선 법정에서 유죄를 받아내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수사 검사 시절 직관(수사검사가 공판을 책임지는 일) 경험을 거론하며 “수사와 공소유지가 일체가 돼 움직이지 않으면 법 집행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수사와 기소 분리는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주장에 대해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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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尹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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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 불만 외면할 수 없었을 것”

윤 총장이 이날 내놓은 입장에선 중수청 설치를 바라보는 검찰의 위기감이 묻어난다. 검찰 내부에서는 중수청법 통과에 조직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보는 기류가 강하다. 검사들은 “정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시도”라는 의구심과 “부패수사 역량 저하로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검사들에게 신망이 높고 ‘강골’ 이미지인 윤 총장이 이 같은 내부 여론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단순히 검사들이 권한을 빼앗기기 싫어서 반발하는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며 “부패범죄 대응 역량이 현저히 떨어져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윤 총장 징계 시도 등으로 누적된 불만이 이번 윤 총장 입장 표명을 계기로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성기범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전날 검찰 내부망에 ‘중수청:일제 특별고등경찰(특고)의 소환’이란 글을 올려 “이 사람들(중수청법 발의 의원들)이 구 일본제국의 유령을 소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경진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장도 이날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운데 검찰개혁2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에 있는 갖가지 제도가 혼합된 새로운 제도들을 급조해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총장이 “국민 관심”을 호소했다는 점에서 남은 4개월의 임기 동안 총장직을 걸고 ‘대국민 여론전’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권의 중수청 추진을 ‘어이없는 졸속 입법’으로 표현한 점을 들어 윤 총장이 여권과의 조율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여론전으로 상황을 타개하려는 뜻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직 징계 처분으로 업무에서 배제됐던 윤 총장이 지난해 12월24일 법원 판결로 업무에 복귀한 이후 3일 대구고검·지검의 격려 방문을 예고하면서 첫 공개 행보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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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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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악 척결 기능 빼앗아 식물검찰 전락… 권력자만 법망 빠져나가는 제도 될 것”

“권력층의 반칙에 대응하지 못하면 공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2일 법조계에서는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검찰 수사·기소 분리를 비판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언론 인터뷰 취지에 대해 “할 말을 했다”며 공감하는 의견이 중론을 이뤘다. 검찰개혁 필요성이 있더라도 사회 거악을 척결하는 기능까지 빼앗아 ‘식물 검찰’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적용된 지 2개월도 안 돼 다시 형사사법제도 틀을 뒤바꾸려는 여권의 무리한 입법이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반발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검찰총장으로서 적절한 시점에 할 말을 했다고 본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필두로 한 정부의 ‘검찰개혁’은 사실상 검찰을 해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초기부터 높았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권력자만 법망을 빠져나가는 기이한 제도가 완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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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시스


한 법조계 원로는 윤 총장의 이런 메시지에 대해 “여권에서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았냐. ‘검찰개혁’의 포장을 내세워 사실상 검찰을 해체하라는 요구에 대해 더는 참지 못하고 오랜 결심을 표현한 것”이라며, 다만 “현 정권이 스스로 임명한 검찰총장과 맞서는 것은 결국 국민과 국가에 모두 불행한 측면”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공소 유지를 위해서라도 수사·기소 분리는 안 된다는 윤 총장의 발언에 대해 “법원은 공판중심주의로 바꾸면서 검찰은 공소와 수사를 분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개혁 방향”이라고 공감했다. 그는 “공판 경험 없이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사지휘도 결국 공소 유지를 위함이지만 수사기관을 쪼개고 검사의 수사지휘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판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중수청 설치는 최근 법무부 장관들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검찰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법안이라고 보는 국민들이 많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진행 중이고 공수처가 성공할 것인지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중수청까지 또 설치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재봉 한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도 윤 총장의 메시지에 대해 “혼란스러운 (형사사법제도 변화) 상황의 반영”이라며 “처음부터 (검찰개혁이) 큰 계획 아래에서 움직인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중수청과 검찰 수사·기소 분리가 100%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면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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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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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검찰, 기소권 갖고 직접 수사 英·加선 사법경찰만 수사권 행사

더불어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법안을 추진하면서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검찰 권한의 두 축인 수사와 기소 중 기소만 남기는 내용의 중수청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다른 나라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계기로 올해부터 6대 범죄만 직접 수사하는 현재의 한국 검찰처럼 일부 국가는 기소권과 함께 일정한 범위의 범죄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한다.

우선 미국과 일본은 검찰이 기소권을 가진 동시에 직접 수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지방 검찰청이 직접 수사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뉴욕시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일본 검찰은 정치인, 대기업 등이 연루된 이른바 ‘특수(特搜·특별수사) 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나 고도의 법률 지식이 필요한 사건 등을 직접 수사한다.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유권자 상대 향응 제공 의혹을 도쿄지검이 직접 수사했다. 반면 검찰이 직접 수사는 하지 않고 기소권만 행사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경찰이 기소권까지 부분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을 비롯해 영연방 전통을 따르는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이들 국가는 수사가 사법경찰의 고유 영역이다.

영국에서는 경찰이 수사권과 기소 이전 단계에서 독자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권한을 보유하며 기소권은 검찰에 있다. 영국은 경찰이 수사·기소·공소유지 권한을 다 갖고 있었지만, 1985년 검찰을 창설해 공소유지를 맡겼고 2000년에 들어서는 경찰의 기소권도 검찰에 이관했다.

캐나다는 경찰이 수사뿐 아니라 기소권도 가지고 있다. 검찰은 주로 공소유지를 담당하는데, 제한적으로 기소 권한도 행사한다. 이와 유사하게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경찰이 수사권한과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행사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중범죄·조직범죄 등에 대해 각각 왕립법률청(Crown Law Office)과 연방검찰(CDPP)이 기소권을 갖는다.

영연방 이외 국가 중에서는 이스라엘의 경우 경찰이 전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며 검찰로부터 수사 지휘를 받지도 않는다. 기소권은 경범죄인 경우 경찰 소속 경찰소추관에, 중범죄인 경우 검찰에게 주어진다.

이창수·이창훈·김선영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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