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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결국 투기꾼은 정부였다”… LH 직원 투기 의혹에 시민들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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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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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또 한 번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명령했지만,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 임대 살게 하더니 자기들은 투기” 시민들 분노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정부가 광명·시흥 신도시 추진 계획을 발표한 지 약 6일 만에 터져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10여 명의 LH 임직원과 배우자가 지난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광명 시흥지구에 2만3028㎡(7000평)의 토지를 약 100억원에 사들였다고 폭로했다. 단체는 매입 금액 중 절반이 넘는 약 58억 원이 금융기관 대출이라는 점을 들어 ‘투기’ 목적에 강하게 무게를 실었다.

시민들은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즉각 분노를 표출했다. 정부가 앞에선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외치더니 정작 뒤로는 자신들이 투기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는 비판이다. 광명·시흥 지역을 신도시로 지정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직원들의 토지 매입 당시 LH의 수장이었던 점이 기름을 부었다.

3일 최대 규모의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부동산 스터디’에 올린 글을 통해 한 누리꾼은 “서민들에게는 온갖 규제를 들이대 내 집 하나 장만 못 하게 해놓고 자기들은 친인척까지 동원해 투기하냐”며 “LH, 국토부 가릴 것 없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LH 직원이 대토 보상을 받기 위해 땅에 수천 그루 묘목을 심어놓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한 한 누리꾼은 “국민은 임대 아파트 살게 하려 안달이면서 자신들은 잇속을 챙기는 정부의 두 얼굴에 소름이 끼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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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일부가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 전 해당 지역에서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업무에서 전격 배제됐다. 사진은 3일 오후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방치된 작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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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누리꾼은 “이번 건은 운이 나빠 걸린 거고 이전까지 자기들끼리 사전 정보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려왔을 것 같다”며 “결국 투기 세력은 정부였다. 24번을 속았는데 정부 믿고 이번에는 집값 좀 내려가려나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스럽다”고 씁쓸해했다.

한편에선 수용부지 인근 토지는 보상액이 투자액의 2∼3배는 될 것이라며 광명 시흥 신도시 지정은 취소하고 창릉 신도시 등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과 가족들에 대한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되기도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이날 오후 2시 고발장을 접수한 활빈단의 홍정식 대표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고발장은 전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접수됐으나 논란이 된 개발 예정지 관할인 경기남부청으로 이첩됐다”며 “아직 수사 초기 단계여서 밝힐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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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9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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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달라’ 자신감 보였던 문 대통령… 투기 의혹에 “전수조사 실시하라”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부동산 문제에 대해 첫 사과 했다. 며칠 후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부동산 공급을 특별히 늘림으로써 공급 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자는 목적(의 대책이 준비돼 있다)”이라고 설명하며 국민을 향해 “저도 (대책이) 기대된다. 기다려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변창흠 장관도 공적인 자리에서 줄기차게 ‘기다려 달라’고 시장에 공급 신호를 보내며 군불을 때웠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3기 신도시 대책의 첫 단추부터 투기 의혹으로 물들며 분위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국민 앞에서 변창흠 장관과 25번째 부동산 대책에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줬던 문 대통령은 결국 이날 “광명·시흥은 물론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와 LH, 관계 공공기관의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공모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빈틈없이 실시하라”며 엄중대응을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겠다고 장담한 정부가 직접 나서 ‘부동산 불패’를 확인해준 꼴이라고 일침했다. 집값 상승에 따른 주거 불안정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큰 상황에서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LH 직원들이 신도시 후보지 땅에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덕적인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이전에도 공공 개발 과정에서 공무원이나 관련 직원들이 사전 정보를 이용해 신도시 등에 투기해왔다는 의혹은 공공연히 제기돼 왔다”며 “이대로는 국민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적발 시 강하게 처벌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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