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고리원전 인근 거주 가족 3명 암 판정, 공익소송 패소해 2300만원 물어줘야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진섭씨, ‘원전 인근 주민 암 발병’ 인과성·정보 위해 공익소송

“가족 중 3명 암…국가가 모른 체해서 손해배상청구”

최종 패소…상대방 소송비용 2300여만원 물어줘야

공익소송에도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원칙’ 일률적 적용

“공익소송 위축되는 결과…예외 적용 필요” 목소리

공익소송 개념 정의·남용 우려 해결 등은 ‘넘어야 할 산’

세계일보

고리원전 전경.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 수 있는 방법은 소송뿐’이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이 소송의 시작이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인근 주민 암 발병과의 인과성을 확인하고자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던 이진섭씨는 “얼마나 많은 (원전 인근) 주민들이 암에 걸렸는지가 궁금했지만 관공서에 가도, 병원에 가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3일 열린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방안 모색 국회 토론회’에서 그는 “소송은 핵발전소 주변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궁금증에서 시작됐다”면서 “애당초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알려줬으면 소송을 안 했을 텐데, (지자체 등에서) 모든 것을 다 막아버렸기 때문에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균도네 가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씨 가족은 부산 고리원전 인근 마을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던 중 3명이 암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2011년 직장암, 이씨 아내는 201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고 장모 역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처가는 1986년도부터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인 균도씨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이씨 가족은 2012년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최종 패소하면서 상대측 소송비용 2318만원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씨는 “제가 입원했을 때나 아내가 입원했을 때 (병원에) 동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암에 걸렸는지가 궁금했고, 저는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국민이 알고 싶다는데 공무원은 개인정보 운운하고 기준도 없이 모른 체해서 소송을 했다. 이런 소송도 돈이 필요한가”라고 토로했다.

세계일보

지난 2012년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촉구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에 나선 이진섭-이균도(왼쪽) 부자의 모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사회구조 개선이나 사회적 약자 등의 권리보호를 위한 ‘공익소송’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원칙’이 공익소송 청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익소송 등에 한해서는 이 원칙을 예외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익소송은 승소 시 대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반면, 사안 자체가 기존 제도·판례의 불합리함 등을 지적하는 만큼 입증하기 어렵고 패소 가능성도 높다.

공익소송자가 패소할 경우, 민사소송법 제98조 등에 따라 상대방의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만,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원칙을 공익소송 패소자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호균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소송비용 TF 위원)는 이날 토론회에서 “(공익소송 패소자에게) 일률적으로 패소자부담 원칙을 강제함으로써 공익소송을 위축시키고, 패소한 당사자는 사실상 재판청구권을 행사한 것에 대한 과도한 제재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소시민들은 패소 시 지불해야 할 소송비용에 대한 우려로 공익소송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령 개정 방향으로는 △사건의 공익성 등이 인정될 경우 소송비용 패소자부담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민사소송법에 반영 △공익소송자를 상대로는 국가 등이 소송비용 회수를 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하는 규정을 국가소송법에 반영 △공익소송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법원이 적극적으로 소송비용을 면제·감액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대법원 규칙에 반영 등이 거론된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민사소송법 이외의 법률이나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방식으로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소송비용 부담 제도의 문제점을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지만, 소송비용과 관련한 일반법인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익소송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공익소송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혜림 법원행정처 민사지원 제1심의관실 사무관은 “입법론적으로 공익소송에 관한 개념정의, 남용 우려 등 부작용 보완과 당사자 간 형평과 재판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참고해 우리 소송체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익소송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 없이 입법이 이뤄질 경우 해석상 분쟁 등을 유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사익을 기초로 한 집단소송도 공익소송으로 분류될 수 있어 이에 따른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다.

아울러 정 사무관은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도 사회적 환기 목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 등 공공정책에 관한 해결을 사법부에 의존해 사법작용이 정치화되고, 사법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경식 법무부 국가소송과 행정사무관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소송비용 감면이 필요한 공익소송의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익소송에서의 소송비용을 완화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에 대한 예외를 마련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범위 내에서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공익소송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소송비용 감면 대상인 공익소송이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