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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70년대 모습 살린 백사마을 개발 신호탄…일반분양 700가구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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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노후한 백사마을 전경. 지붕 곳곳에 빗물이 새 임시처리를 한 상태다. <이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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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마을(백사마을) 세입자분들에게 주거지 보전사업 정보를 알기쉽게 전달해드리고 이주비용이 부족한 분들에게는 복지기관을 연계해드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삿짐 나르는 일을 돕기도 하죠"(조환기 서울시 백사마을 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서울시 노원구와 남양주시를 가르는 불암산. 백사마을은 이곳 노원구 중계본동 버스 정류장 종점에서 내려 산자락 속으로 5분은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초록 항공점퍼를 걸친 조 사무국장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교회 쪽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는 2017년 12월부터 3년째 백사마을 세입자에게 사업 진행과정·이주 정보 등을 알려주는 소식통이다. 교회 꼭대기에서 바라본 백사마을은 비탈진 지형을 따라 펼쳐져 마치 불암산 품에 안긴 듯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민들이 거주한 정착지다. 마을 이름은 주소지인 중계본동 104번지에서 유래했다. 50년 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을 내 주택 대부분이 훼손됐다. 일부 집은 지붕에 검정 천막을 두르고 그 위에 타이어를 놓아 안방으로 흘러들어오는 빗물을 막고 있었다. 길은 마을 곳곳으로 흘렀지만 너댓 사람이 지나면 가로막힐 정도의 폭이었다. 마을 내 가장 넓은 길조차도 차 세 대가 지나기 빠듯했다.

하지만 이곳 마을 주민들은 지난 3일 발표된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로 들뜬 상태였다. 청과물 가게에 앉은 아줌마도, 버스 종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운전기사도 저마다 생각하는 재개발 이후 백사마을 모습을 늘어놓았다. 마을 입구에는 때맞춰 걸린 각종 건설사들의 사업시행인가 축하 현수막이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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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 재개발 조감도. 저층주거지는 마을 원형을 보전하는 주거지보전사업지로 조성된다. [자료제공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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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시와 노원구는 백사마을(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일대) 18만8900㎡(약 5만6600평) 사업시행계획인가를 고시하고 본격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2009년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지 12년 만이다.

시는 이곳에 최고 20층 아파트 34개 동(1953가구)과 함께 지상 1~3층 규모 저층형 임대주택 136개 동(484가구)을 지어 총 2437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저층 주택지는 백사마을 서편 4만832㎡에 조성되며 건축가 9명이 각기 다른 디자인을 도입하되 마을 원형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개발한다. 단지간 분리를 방지하고 사회적 계층이 섞이는 소셜믹스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공동이용시설을 개방하고 단지 경계부 차단 시설물 설치를 금지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전용면적 190㎡ 규모 펜트하우스도 들어선다.

서울시는 분양주택 1953가구 중 조합원 분양분(1200여가구)을 제외한 750여 가구를 일반 분양으로 내놓을 전망이다. 동시에 재개발로 공급하는 임대 비율이 20%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 이례적인 사업지로 꼽힌다.

'백사마을'은 1971년 지정된 개발제한구역이 2008년에 해제되면서 정비사업을 추진했지만 그동안 사업성과 주민갈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2016년에는 당초 사업시행자였던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2017년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되면서 사업이 정상화됐지만 설계안 층수 등으로 주민간 의견 차이로 답보 상태가 이어졌다.

시는 조례를 개정해 '주거지보전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유형을 도입할 정도로 백사마을 개발에 열의를 보였다. 주거지보전사업은 재개발구역에서 기존 마을의 지형, 터, 생활상 등 해당 주거지 특성 보전 및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을 말한다. 과거 마을 흔적을 보전하는 동시에 기존 주민 재정착·대규모 주택 공급을 동시에 잡겠다는 취지에서다.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역임했던 진희선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서울이 600년의 도시라고 하면서 조선시대, 일제시대 건물은 남기고 우리의 삶을 담은 70~80년대 주거에 대한 풍광은 일제히 없어져 버리는 것들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다양한 켜를 간직한 도시의 모습을 남기자는 측면에서 사업을 추진했다"고 했다.

그러나 원주민 재정착률을 높이기 위해 구릉지 지형에 최고 20층 높이 아파트를 허용하면서 민간에 적용하던 층수 제한을 스스로 깼다는 비판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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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마을 내부에서 바라본 노원구 [자료제공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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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사마을 재개발로 해발고도 70m 땅에 20층 건물이 지어지는데 이는 지반 40m에 지어진 인근 최고층 아파트보다 10층(약 30m) 가량 더 높다. 서울시는 35m 지반 위에 세워지는 민간 건축계획안은 15층으로 규제하지만 정작 SH공사가 시행하는 백사마을에는 해발고도 90m 수준인 땅에도 아파트가 들어선다. 이런 정비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중 일부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계위는 도시계획·교통·경관 등 각계 전문가와 공무원이 모여 용도지역 변경·층수 완화 등을 결정하는 곳이다.

서울시는 국제지명공모까지 진행한 설계안을 지형에 맞게 심의했다는 입장이다. 백사마을 건축심의에 참여한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기존에 제기됐던 문제는 건축심의 과정에서 모두 해결했다"고 밝혔다. 다만 백사마을에 적용했던, 용적률 상향을 전제로 한 주거지보전사업은 다른 곳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 따르면 현재 백사마을은 전체 597가구 중 394가구(약 66%)가 이주를 완료했다. 시는 올해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하고 2022년 관리처분 계획인가 후 착공할 계획이다. 완공 목표일은 2025년 상반기다. 백사마을 재개발은 국토부가 2·4대책에서 발표한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과는 무관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축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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