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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국민’ 내세워 계산된 정치 행보…검찰총장, 대선 직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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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격 사퇴 배경·전망

“검수완박” 비판에 “대구 고향 온듯”

사흘간 치밀하게 주목도 높이기

권력 맞서는 이미지로 효과 극대화


한겨레

4일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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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한 표면적인 이유는 여당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신설’이다.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인데, 수사청을 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면,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취지다. 이 연장선에서 그는 사의를 밝히며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퇴에 정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대선 출마’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윤 총장의 정치적 자산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될 ‘법치주의’를 지키려 했다는 모양새와 ‘권력에 맞선 공직자’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정계진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사이 야권을 중심으로 한 ‘윤석열 대망론’이 충분히 무르익었다.

법조계 “사퇴 외 다른 길 어려웠을 것”


검찰 내부에선 윤 총장이 이번 수사청 갈등 국면에서 사퇴 외에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일선에서 수사-기소권 분리를 위한 수사청 설치를 사실상 검찰 해체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고려하면 검찰의 최고 수장이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당이 관련 입법을 위해 ‘속도전’에 나서고, 수사청에 대한 검사들의 실명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대를 메는 것밖에 없다”며 “가만히 있으면 ‘조직이 해체되는데 총장은 뭐 하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것도 공직자로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지금껏 중도 사퇴한 역대 총장을 봐도 알 수 있듯 총장은 그런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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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정계진출 선언


윤 총장은 이날 사의를 밝히며 정계진출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사실상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퇴임 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답하고, ‘정치도 포함되느냐’는 거듭된 물음에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한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철저히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윤 총장의 지난 사흘 행보도 결국 정치적 주목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퇴임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의 수사청 신설 움직임을 작심 비판하고, 이튿날 언론의 관심 속에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겨냥해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준비된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이어간 뒤, 이날 사의를 표명한 일련의 과정이 짜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3일 ‘보수의 심장’이자 박근혜 대통령 수사 관련 부채가 있는 대구를 방문해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한 발언을 두고서도 보수층의 지지를 노린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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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퇴근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1시간만에 바로 수용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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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진출 언제 결심했나


법조계에서는 윤 총장의 정치권 진출과 대선 출마에 관해 그동안 엇갈린 전망이 있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최근 정치권에 투신했던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이나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의 실패 사례를 들며 “윤 총장은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다. 조직과 후배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권과 대립하는 것일 뿐 결국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그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 사이에서는 “윤 총장은 원래 사회, 경제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총장이 되고 얼마 뒤부터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와 자주 연락하는 한 지인도 1년여 전부터 “확실히 달라졌다. 정치하는 걸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어떤 계기로 정치권 진출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지난해 이어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과정에서 마음이 굳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참모로 분류되는 한 검찰 간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손발을 다 묶어버린 인사가 결정적이었다”며 “지난해 총장 고립 인사와 감찰, 수사지휘권 발동 등을 거치며 직접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윤 총장을 잘 아는 한 후배 검사는 “정치를 오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윤 총장 성격상 일사불란한 검찰과 달리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치권에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관련영상] 윤석열 사퇴! 요동치는 정계 [이철희의 공덕포차 e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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