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드라마야 다큐야? 금기 깬 혼란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편당 30분인 웹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 끝낸 박신우 PD

[경향신문]

경향신문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에는 극중 인물이 카메라를 보며 인터뷰하거나 작품 밖 광고주에게 직접 어필하고, 인물의 침묵 위로 자막을 새기는(맨 위부터) 등 드라마의 금기를 깨는 연출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카카오TV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메라 보며 인터뷰하는 주인공
PPL상품 들고 자막으로 어필도

“콘텐츠의 가장 좋은 길이는 어느 정도인 걸까?”

<질투의 화신> <남자친구> 등 개성 넘치는 장편 TV 드라마로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박신우 PD(사진)가 덜컥 30분짜리 웹 드라마 연출을 수락한 것은, 늘 골몰하던 하나의 의문 때문이었다. 직전작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작업에 돌입해야 했을 만큼 사전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제안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의 오리지널 콘텐츠, 30분 분량의 미드폼 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박 PD의 첫 번째 웹 드라마,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 <도시남녀의 사랑법>이 OTT 시대에 걸맞은 흥미로운 ‘실험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 <도시남녀의 사랑법> 종영을 맞아 이뤄진 화상 인터뷰는 변화한 드라마 제작 조건과 제약 속에서 박 PD가 찾아낸 ‘돌파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대본 같은 거 없어? 그냥 말하면 돼?” “널 봐야 되니, 아니면 카메라를 봐야 되니?”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도입부터가 남다르다. 주인공 여섯명이 카메라를 직시하며 렌즈 밖 인터뷰어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 형식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인물들이 광고주에게 직접 어필하며 간접광고(PPL) 상품들을 들어보이는가 하면, 드라마가 송출되는 플랫폼 카카오TV와 넷플릭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한다. 화면 속 리얼리티가 생명인 기존의 ‘드라마다움’이 자주 부서지고, 대신 카메라 안과 밖의 구분이 지워진 관찰 예능 혹은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연출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박 PD는 인터뷰에서 “지금 보는 것이 ‘어떤 제목의 드라마’라는 기분이 최대한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짧은 분량, 기존 화법 적용 어려워
‘극중 관찰 예능’ 형식 설정해
실험 드라마보다 현실 연애처럼 느끼게

“30분 길이의 미드폼이다보니, 준비한 이야기를 장면들로 설계해 이어나가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기존 드라마처럼 회마다 기승전결을 드러내 긴장감을 만들기도 어려웠고요. 이런 이유 때문에 인터뷰를 병행하는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을 많이 빌려왔고, 덕분에 여섯 인물들의 다양한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죠. 제한된 분량 안에서 애초 의도한 현실 연애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습니다.”

인터뷰 형식은 <연애의 발견> <로맨스가 필요해> 등 정현정 작가의 전작에서도 종종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인터뷰를 드라마 특유의 화법으로 퉁치지 않고, 드라마 속에서 촬영되고 있는 ‘관찰 예능’ 일부로 설정하는 극중극 실험을 택하면서 독특한 리얼리티를 자아낸다. 정 작가 특유의 ‘현실 연애’ 미학을, 쉽게 몰입하기 어려운 ‘미드폼’이라는 새 형식으로 풀어내기 위한 박 PD의 고민이 묻어난 지점이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이 드라마는 극중극인 ‘도시남녀의 사랑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포착한 ‘페이크 다큐’ 형식을 띠고 있어요. 각 인물들은 이 예능에 참가하며 인터뷰에 응하고, 인터뷰에서 쏟아낸 말들이 채팅을 통해 다른 인물들에게 전해진다는 세계관을 가정하고 만들었습니다.”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그렇게 드라마와 다큐 사이, 진짜와 가짜 사이를 오가는 혼란스러움을 자아낸다. 박 PD는 이 의도된 혼란이 오히려 ‘드라마다운 긴장’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한다. “페이크 다큐라는 예능 형식을 취하면서도 드라마적인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PPL을 직접 언급하는 등 자꾸만 작품의 외연을 의식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실제 드라마 제작 현실의 고민을 녹여낸 것은 그 때문입니다. 현실의 일부를 작품 속에 녹이면, 드라마 속 내용도 ‘리얼’로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죠.”

드라마의 금기를 깨면 깰수록 점점 드라마다워지는 이상한 역설을 거듭하면서,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이 시대 청년의 얼굴을 재현하는 내용상 진전까지 일궈낸다. 자신의 ‘평범함’이 취업과 결혼에 실패한 원인이 됐다 믿었던 이은오(김지원), 자신만의 윤리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삶을 고집하는 서린이(소주연) 등 MZ세대의 변화된 세태를 재현한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형식의 파격에도 드라마가 여전히 무게감을 지니는 까닭은, 이처럼 현실에 무겁게 발디딘 주제 의식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실험작’을 성공리에 끝마친 박 PD는 미디어 환경 변화와 함께 드라마의 실험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청 환경과 방식을 바꾸는 플랫폼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들이 앞으로도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다양화가 좀 더 긍정적으로 기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번 작품을 끝내며 숏폼이든, 미드폼이든, OTT든, TV든 영상화 작업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배움도 얻었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춤추는 시장 “이리대랑게”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