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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공무원·LH직원 투기하면서 우리 땅은 수용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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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투기’ 의혹 시흥 일대 가보니

“도둑놈들” “투기라면 엄벌해야”

의혹에 뿔난 현지 주민들 격앙

버드나무 묘목 2000여 그루 촘촘

필지 8∼10곳 LH 직원 공동명의

“같은 날 땅 매입이 우연이겠나”

세계일보

4일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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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땅을 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일 줄은 몰랐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네요.”

4일 3기 신도시 개발예정지인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 만난 주민 강모(65)씨는 넋두리부터 늘어놨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는 강씨는 “10여년 전 광명·시흥지구의 보금자리지구 지정부터 개발 얘기가 여러 차례 나왔으나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나와 지역 민심이 격앙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라면 엄벌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자기들은 투기하고, 몇십년 넘게 머무른 우리 땅은 수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기 신도시 발표와 함께 이곳 땅값은 천정부지로 뛴 상태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도로와 붙은 대지는 3.3㎡당 1500만원, 안쪽 대지도 1000만원을 호가한다”며 “공시지가(3.3㎡당 300만∼400만원)의 120∼150% 선에서 보상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민 반발이 크다”고 전했다. LH직원의 투기의혹은 뿔난 주민들의 불난 심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LH 직원 등이 구입한 땅으로 알려진 토지에는 버드나무 묘목 2000여그루가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인근 주민은 대뜸 “도둑놈들”이라고 소리쳤다. 그는 “나무를 빽빽하게 심는 것은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한 전문 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토지보상업무를 하는 LH 직원들이기 때문에 나무 수대로 보상을 하는 방법을 알고 무조건 많이 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20년째 밭농사를 지어온 한 주민도 “지난해 나무를 심었으니, 1년이 채 안 된다”면서 “조경사업을 위해선 주로 소나무를 심는데, 버드나무가 비교적 손이 덜 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2년 전쯤 땅이 팔린 뒤 새 소유주가 논을 메우고 다른 작목으로 바꿨다”면서 “한여름에 물을 주기 위해 사람들이 왔던 것을 빼고는 오간 적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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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소재 농지 일대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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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시흥시 과림동 현장에 묘목이 식재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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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구입한 토지를 본 주민들은 이른바 대토 개념의 ‘협의 주택’ 분양이나 ‘새 아파트’ 입주를 노린 위장전입, 지분 쪼개기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과림동 일대 토지를 공동 소유한 LH 직원 A씨가 인근 건물을 매입해 거주지로 기재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과림동 일대는 10여년 전부터 개발을 놓고 부침을 겪으면서 지금은 일부 집성촌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거주지로 지목된 건물도 1층에 소규모 공장이 운영돼 2층에선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고 주민들이 증언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대토보상 순위를 높이기 위해선 해당 토지를 소유하고 직접 거주하는 현지 주민이 1순위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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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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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직 구체적 보상안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A씨와 지인들이 소유한 토지 규모 등을 감안하면 264㎡ 규모의 주택용지나 국민주택 크기의 새 아파트 입주권이 적어도 3개 이상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당 토지는 실제로 보상을 위한 최소 규모로 지분이 쪼개어져 있다.

결국 LH 직원들은 농지에 심은 묘목으로 보상금을 두둑하게 챙기고, 서울과 불과 5㎞ 안팎 떨어진 노른자위 땅에 지어진 집을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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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주변 도로에 LH를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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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현지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이곳 과림동을 포함해 인근 무지내동에만 필지 8∼10곳이 LH 직원 공동명의로 돼 있다. 일부 토지 대장에는 직원과 같은 주소지의 가족들이 공동소유자로 등재돼 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시민단체 주장처럼) 같은 날 한 소유주의 땅을 매입한 사람 모두 LH 직원인 것이 우연이겠냐”면서 “실명으로 산 이 직원들은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 외지 토지 소유주 대부분은 명의를 빌려 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3기 신도시 예정 지구 인근 자치단체들이 직원들의 투기 여부를 밝히기 위해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시흥시와 광명시에 이어 안산시도 공무원 등의 토지거래 조사에 착수했다. 안산시 관내에는 3기 신도시에 포함된 장상지구와 신길2지구가 있다.

시흥=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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