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소주 2병·번개탄 사간 손님… 마트 주인 ‘눈치’가 살렸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극단 선택 의심, 차 번호 적어둬… 주인 “느낌 이상해 경찰에 신고”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한 마트. 이모(57)씨가 운영하는 매장에 50대 여성 A씨가 들어왔다.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A씨는 냉장고에서 꺼낸 소주 두 병과 과자 두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왔다.

A씨는 “번개탄(착화탄)이 어디 있나요” 하고 물었다. 이씨는 “가족들이 고기 구워 먹나 봐요”라고 답하며, 번개탄 하나를 건넸다. 그러자 A씨는 “번개탄 하나로는 부족할까요?”라고 되물었다. 번개탄 2개와 소주 2병, 과자 2봉지 값으로 1만1000원을 낸 A씨는 라이터도 하나 샀다. 이씨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마트 주인이 번개탄과 라이터를 사서 나가는 손님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고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계산을 마친 A씨는 흰색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에 이씨는 황급히 A씨의 차 번호를 적어뒀다. 곧바로 112에 신고하려 했지만, ‘혹시라도 경찰이 헛걸음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112에 빨리 신고하라”는 딸의 말을 듣고 이씨는 오후 4시 45분쯤 전북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전화를 걸었다. “소주 두 병과 번개탄을 사 간 손님이 있다. 느낌이 이상하다”고 했다.

경찰은 이씨가 알린 차 번호로 A씨 위치를 추적했다. 당시 A씨는 전북 부안군 부안읍 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서파출소 경찰관이 승용차를 멈춰 세웠고, A씨를 설득해 파출소로 데려갔다. 끝내 입을 열지 않은 A씨는 경찰 연락을 받고 찾아온 남편과 광주광역시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손님의 행동을 유심히 본 마트 주인이 눈치챈 덕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4일 본지와 통화하며 “20년 가까이 마트를 운영했지만, 손님에게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은 처음”이라며 “A씨가 다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 않도록 가족이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정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