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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보상기준 땅 쪼개고, 나무 심고... LH 직원들의 익숙한 '투기 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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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장충모(왼쪽에서 네 번째) 사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LH 고위 간부들이 4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사전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L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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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사전 투기 의혹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들의 토지 매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농지법 규제를 피하고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작물을 재배하는 척 했고 토지보상 규정에 맞춰 필지를 쪼갠 것으로 의심된다. 신도시 개발지역에서 이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의 단골 수법이다.

다년간 보상 업무로 습득했나


4일 LH 직원들이 보유한 경기 시흥시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과림동의 면적 5,025㎡인 밭은 지난해 2월 27일 22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이 땅은 이후 1,407㎡·1,288㎡·1,163㎡·1,167㎡의 네 필지로 분할됐다. 토지수용 시 1,000㎡는 현금보상 대신 인근 지역 땅을 받을 수 있는 대토보상의 기준이 된다. 쪼개진 땅의 현 소유주는 7명이고, 이 중 4명은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LH 직원들이다.

앞서 2019년 6월 3일 과림동의 면적 3,996㎡인 논은 LH 직원 4명이 15억1,000만원에 매입했다. 이 중 2명은 1,332㎡, 나머지 2명은 666㎡씩 땅을 나눠가졌다. 4명 가운데 3명은 인근 LH 과천의왕사업단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동료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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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의혹을 받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심어진 묘목.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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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사들인 농지에는 현재 어른 무릎 높이 정도의 묘목 수천 그루가 촘촘하게 심어졌다. 농지법에 의해 농지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고, 토지수용 시 나무에 대해선 별도의 보상금이 책정된다. 규제를 피하고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묘목을 심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림동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이 사람들이 농지에서 농사를 못하니까 나무를 심었다”며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게 뻔히 보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투자에 대한 수익성을 자신한 듯 수십억원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에 따르면 LH 직원들은 토지 구입 비용으로만 100억원을 쏟아 부었고, 58억원은 시흥의 농협에서 받은 대출이다. 일부 땅은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소위 맹지인데, 개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막대한 대출까지 끌어와 투자하기 어렵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판단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시흥 과림동과 무지내동의 쓸만한 토지는 평당 900만원에서 1,200만원에 팔릴 만큼 비싸다”면서 “입지가 안 좋은 농지는 평당 180만원부터 200만원 초반대에 거래되니 농지 밖에 답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달 대출 이자가 수천만원에 달할 텐데 개발될 것이란 정보를 알고 1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구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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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 광명시흥지구 투기 의혹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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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에 투기로 비치는 게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엄명으로 출범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이날부터 대대적인 조사에 돌입했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지만 처벌 여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적용 가능한 법률은 공직자윤리법(이해충돌 방지의무)과 공공주택 특별법,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등인데 가장 중요한 업무 관련성 입증이 어려운 탓이다.

국토교통부 자체 조사에서도 의혹에 연루된 직원들이 신도시 관련 부서 근무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눈에는 명백한 투기이고 수법 자체에 투기 의혹이 짙어도 시장의 동향을 따져 스스로 판단한 토지 매입이라고 발뺌할 경우 처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엉성한 법망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난의 중심에 선 LH도 이날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조직 내부를 대대적이고 강력하게 혁신해 공직기강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LH의 한 직원은 업무 정보를 활용해 유튜브에서 유료 강의를 한 사실까지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지역본부 의정부사업단에 근무하는 40대 오모씨는 회사 허락 없이 온라인 부동산 투자 강의 사이트에서 토지 경·공매 강의를 하다 적발돼 현재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이다. 오씨는 자신을 ‘대한민국 1위 토지 강사’, ‘토지 경매1타(매출 1위) 강사’라고 홍보했다. LH는 “이번 주 내에 조사를 완료하고 최종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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