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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정희의 이게머니]'경기회복 딜레마'…긴축없는 긴축 우려에 떠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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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4476억달러, 또 사상 최고

스위스 통화스와프 5년 연장..이주열 "기축통화국과 스와프 확장 노력"

亞 신흥국, 작년 외환보유액 7년 만에 최대폭 증가

`버냉키 텐트럼`에 떨었던 인도·인도네시아 등 외환 확충

이데일리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 오른쪽)이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개최한 잡스 서밋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WSJ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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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긴축’ 없는 긴축 우려에 금융시장 전반이 떨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국채 금리 상승 완화를 위한 방안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자 3대 뉴욕지수가 1~2% 하락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5%로 높아졌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연준의 물가 상승 용인 등이 맞물려 경기회복 기대와 과도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경기 회복은 좋은 일이지만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졌던 ‘버냉키 텐트럼’을 떠오르게 한다.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은 외환보유망 확충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아시아 신흥국 외환보유액 증가액이 2013년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탄탄한 외환보유액,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도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린 경험이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중순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 확장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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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켓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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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회복의 딜레마..“긴축 안하겠다는데도 긴축 우려, 안정책 내놔라”


최근 금융시장은 체감 경기가 여전히 싸늘한데도 아이러니하게 경기 회복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1월초 블루웨이브(민주당이 대통령과 상원, 하원 장악) 확정 이후 1%를 찍더니 4일 1.5%대로 올라섰다. 지난 주엔 1.6%까지 상승, 급격한 변동성에 시장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장기 금리 상승은 코로나19 백신 보급, 강력한 부양책, 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한 것이지만 단기 금리를 반영하는 2년물까지 함께 오르면서 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과도한 인플레이션 우려보다 예상보다 이른 돈 줄 죄기, 유동성 축소라는 것을 보여줬다.

즉, 금융시장은 경기가 회복될수록 연준이 통화 긴축을 앞당길 것이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기지표 개선, 코로나19 백신 보급은 증시 등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요인이지만 외려 주식과 채권 시장 약세(채권 금리 상승, 가격 하락)를 촉발하고 있다.

기술 성장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지난 주 5% 가까이 하락한 데 이어 이번 주에도 3.6%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 니케이지수도 2주 연속 하락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3주째 떨어지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지난 주 각각 3%대, 5%대 하락했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우리나라 국채 금리도 올랐다. 10년물 금리는 1.972%(4일)로 연초 이후 0.26%포인트 상승했다. 2019년 3월 이후 최고치다. 공포지수(시카고옵션거래소지수·VIX)는 28.6으로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

시장이 바라는 것은 자산 매입 듀레이션(만기) 조정, 수익률곡선제어(YCC·특정 채권 금리를 특정 수준에 맞추는 정책),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단기 국채 매도하고 장기 국채 매입) 같은 구체적인 액션이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개최한 잡스 서밋 화상 컨퍼런스에서 금리 급등에 대해 “연준의 목표를 위협할 수 있는 시장의 무질서한 상황 등을 우려한다”면서도 추가 대응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은 실망감에 주식과 채권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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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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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냉키 텐트럼’ 떠올린 중앙은행, 외환 곳간 정비하자


이런 분위기에 2013년 ‘버냉키 텐트럼’에 떨었던 외환 취약국들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3년 5월 양적완화(QE)를 종료하기 위해 자산 매입 규모를 점차 축소해나가겠다는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을 언급하자 경상수지, 재정수지가 모두 적자이고 외환보유액이 적은 취약국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통화가치가 급락한 바 있다. 이런 후폭풍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을 ‘프래즐 파이브(Fragile Five·5대 취약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직 경기가 완연하게 회복되지 않은 만큼 테이퍼링이 단기에 나타날 가능성은 적지만 작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세계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부양책을 쏟아부은 만큼 자금을 회수할 때도 더 큰 후폭풍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연준은 작년 3월부터 양적완화를 재개했고 석 달도 안 되는 사이 쏟아부은 자금이 3조달러에 육박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부었던 자금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이에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망 확충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아시아 신흥국 (일본, 호주 제외) 외환보유액은 4677억달러 증가, 2013년 이후 가장 크게 늘어났다. 특히 인도는 외환보유액이 2013년말 3000억달러도 채 안 됐으나 올 1월말 5900억달러로 급증, 세계 5위 수준이다. 인도네시아도 비슷한 기간 900억 달러 수준에서 1400억달러로 증가했다. 다만 터키는 2013년 당시보다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상태다.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나 이머징 마켓 프록시(Proxy·대리) 통화란 점에서 외국인 자금이 들락날락하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바 있다. 2013년 6월에만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5조원 넘게 내다팔았고 그해 11월부터 5개월간 외국인 자금이 순매도세를 보이며 증시 변동성을 높였다. 최근에도 이런 가능성이 엿보인다. 외국인들은 지난 달 26일에만 무려 2조8000억원 가량을 내다팔아 사상 최대 매도세를 보였다.

이에 한국은행도 외환보유망 확충을 서서히 강화하고 있다. 2월말 외환보유액은 4476억달러로 한 달 만에 48억달러가 늘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또 3월 만료될 106억달러 규모의 스위스 통화스와프를 5년간 추가 연장하기도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외환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차원에서 통화스와프를 하겠다”며 “미국이 중요하지만 다른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미국, 캐나다, 스위스, 중국,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UAE 등의 양자 통화스와프를 체결, 총 1962억달러 이상(다자간 통화스와프 포함)의 외환안전망을 갖춰놓은 상태다. 그밖에 올해도 600억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긴축 없는 ‘긴축 텐트럼’이 시장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만큼 시장의 기대치가 해소되지 않는 한 금융시장 변동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 곳간을 정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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