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ITC 최종의견서 공개…SK "영업비밀 침해 안해" 반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져온 문서 숨기거나 없애라

메일도 저장하면 안 된다"

관리자 차원의 증거인멸 지시

영업비밀 침해 인정 내용 등

최종의견서에 자세히 담겼지만

SK이노 "침해됐다는 영업비밀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ITC 판결 유감입장 재차 강조

아시아경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22개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최종 의견서를 공개했다. 사진은 서울 LG 본사 건물(왼쪽)과 SK 본사 건물 모습<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L’회사에서 가져온 문서를 숨기거나 없애라. 이메일도 저장하면 안 된다." (SK 배터리 부서 관리자)


"사내 문서 보안에 관한 정기점검 권고. 이력서 등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문서, 사진·동영상 등 개인 정보,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문서. LG·경쟁자·행동계획 등을 키워드로 검색해 삭제할 것." (SK 정보보호부서 선임관리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 공개한 위원회 의견서에 담긴 내용이다. SK이노베이션이 수년간 자사 직원과 영업비밀을 빼돌렸다며 LG에너지솔루션이 소송을 제기한 후 ITC는 2년여간 살펴보고 최종 결론을 내리면서 SK 측의 이러한 행위를 잘못이라고 봤다. 앞서 지난달 최종 판결 이후 한 달가량 지나 공개된 이번 의견서에는 과거 SK가 전사적으로 진행한 증거인멸 방식과 LG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내용이 자세히 담겼다. 반면 SK는 이러한 사실이 공개된 후에도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ITC가 판단하지 못했다"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ITC "SK 증거인멸, 고위층 지시…심각한 수준"

LG가 SK의 인력 빼가기, 영업비밀 침해를 문제 삼은 것은 ITC에 소송을 제기한 2019년 4월 이전부터였다. 앞서 2017년 우리 법원에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 이긴 적이 있고, SK 측에 공문을 두 차례 보내기도 했다. ITC의 의견서에 따르면 LG가 ITC에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인 2019년 4월 SK는 전사적으로 나서서 증거를 없앴다.


위원회는 "명백히 이 사건은 어느 직원이 은밀하게 증거를 없앤 게 아니라 SK 관리자가 다수 조직의 관리자에게 문서 삭제 지시를 내리고, 회사는 이러한 문서 파기 행위를 밝히거나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ITC는 앞서 지난해 예비판결에서 SK가 확보한 기술이나 자료가 영업비밀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가 잘못이라고 보고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1년여 뒤인 지난달 최종 판결에서도 이를 그대로 인정하며 10년 수입 제한 조치를 결정했다. SK가 그간 이를 정기적 보안 점검이나 관행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반면 LG는 삭제되지 않은 자료, 복구는 못 하지만 파일명이 남아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ITC에 설명했다. LG 배터리의 원가나 조달, 가격 책정을 SK가 몰래 파악해 이득을 봤다고 주장했고 이를 인정받았다. 위원회는 "(SK의) 문서 삭제가 관행이라는 변명, 은폐 시도를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행했다고 판단했다"면서 "LG가 입증한 수준은 연방순회 항소법원이 기존 사건에서 요구한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판단했다.



아시아경제

ITC가 5일 공개한 위원회 의견서(Commission Opinion) 가운데 일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0년 연구" SK 주장, 왜 인정 못 받았나

배터리 영업비밀을 둘러싼 논쟁에서 SK가 그간 주장했던 것은 1982년부터 독자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40여년간 배터리 기술 개발을 진행하며 세계 최초의 고밀도 니켈 배터리 개발과 국내 첫 전기차 블루온, 첫 양산차 레이에 탑재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하지만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뼈아프다.


LG 측이 침해당했다며 문제 삼은 영업비밀은 11개 분야 22개다. 전체 공정을 비롯해 원자재부품명세서, 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조합 비율), 파우치 실링, 전해질 등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일체 공정을 아우른다. 특히 SK가 완성차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내는 과정에서 LG 쪽의 정보를 훤히 알았던 정황을 확인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폭스바겐은 2018년 9~10월 전기차 배터리 납품업체를 SK로 결정했는데, ITC는 당시 SK가 LG의 가격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LG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K는 이번 사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침해했는지를 ITC가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절차상 흠결로 결정했을 뿐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ITC가 침해당한 배터리 기술을 특정해달라고 하자 LG는 배터리 기술 전체라 할 수 있는 100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제시했는데, 이러한 점이 영업비밀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반면 LG는 당초 예정됐던 공판에 앞서 영업비밀을 제출한 후 지난해 1월 22개로 추려 다시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소송과 관련한 공판은 SK가 지난해 조기 패소 판정을 받으면서 열리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수십 년 전 배터리 연구개발(R&D)을 시작한 건 맞는 얘기다. SK는 1990년대 초반 전신 유공 시절 전기차 축전기 개발 국책과제를 한 적이 있고 LG 역시 가전사업을 오래전부터 하며 1990년대부터 리튬이온전지를 연구해왔다. 다만 LG가 2000년대 이후 전기차·전력저장용 2차전지 연구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반면 SK는 비슷한 시기 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격차가 벌어졌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