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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투기꾼 좀 잡아달라" 사정하던 LH 직원들은 왜 '괴물'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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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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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투기 의혹을 보면서 10여년전 국토교통부와 LH공사를 출입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동탄2 위례 등 수도권 신도시가 개발되며 막대한 보상금이 풀렸고, 이를 노린 투기꾼들이 극성을 부렸다. 기삿거리가 떨어지면 주말마다 차를 몰고 신도시나 보금자리주택 예정지를 찾아갔다. 늘 상상을 초월하는 투기 수법이 판을 쳐 아이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다.

■ 벌통은 양반, 살아있는 오리에 '부처님'까지 투기 동원

투기꾼들의 수법은 나날이 진화했다. 2000년대 중후반 동탄 신도시 예정지에서 판을 치던 투기수법이 가짜 양봉업자였다. 당시 신도시 예정지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면 스티로폼 벌통이 수십개씩 가득했다. 물론 꿀벌은 살지 않았다. 벌통 20개 이상이 있으면 이른바 '상가딱지'(생활대책용지)를 받을 수 있다는 보상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중국산 스티로폼 벌통은 하나에 1000원이면 산다고 했다.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공람공고일에 맞춰 국토부가 항공사진을 찍는다. 이후에 지은 건물이나 나무 등 지장물은 보상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벌통 같은 비닐하우스 내 시설물은 잡아낼 방도가 마땅치 않아 외지인은 물론이고 원주민도 투기 유혹에 빠져들기 쉬웠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신도시 예정지도 가보면 닭과 오리 울음소리를 유난히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역시 보상을 노린 이른바 동물투기였다. 닭보다는 오리를 갖다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황당했다. 오리는 추위에 강해 겨울에 그냥 둬도 잘 안 죽는다는 것이었다. 동물의 목숨까지 인간의 욕심에 이용된다니 씁쓸했다.

백미는 종교투기였다. 예정부지에 교회나 불당이 있는 경우 신도시 내 종교용지로 보상해준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당시 LH공사 보상팀 직원과 동행 취재 중 한 컨테이너 박스를 찾아냈는데, 안에는 누가 봐도 새 것으로 보이는 불상과 불전함이 있었다. LH직원도 금색 불상을 보고는 혀를 찼다. 낡은 건물에 어디서 구했는지 십자가 첨탑을 통째로 떼어다가 붙여놓은 경우도 있었다. 수요일, 일요일 예배시간도 버젓이 적혀있는데, 주민들 말로는 드나드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 "투기꾼 좀 잡아주세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건 바보짓이다. 수용은 감정가로 매입하니 메리트가 없다. 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라고 했다는데, 신도시 투기수법을 모르고 한 말이면 무능이고 알고 한 것이면 부적절한 감싸기다.

과거 LH공사 직원들과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택(이주자택지), 협택(협의양도인 택지) 등을 노린 투기꾼들을 잡느라 분주했던 경험을 되살려 보면, 이번에 LH공사 직원들이 광명 시흥에서 노린 것은 '협택'으로 보인다. 공람공고일 이전 일정 규모 이상 (수도권 1000㎡) 땅을 가진 경우 개발된 신도시에 감정가로 단독주택지 혹은 인기가 높은 점포겸용단독주택지를 받을 수 있다. 나무를 심어놓은 것은 지장물 보상을 받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잡목은 땅값에 포함돼 보상에서 제외되지만, 조경수나 유실수의 경우엔 수령에 따라 그루당 수만원에서 수십만원 가량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번 LH공사 직원들의 일탈이 조직 전체의 일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취재 과정에 만났던 LH공사 보상 담당 직원들은 "제발 투기꾼 좀 잡아달라"고 늘 호소했다. 최소한 내가 아는 많은 보상 직원들은 공기업의 토지 보상금이 줄줄 새는 것을 막는 것이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보상액에 불만을 가진 땅주인들이 작두를 들고 사무실로 쳐들어와 위협하고, 분뇨를 뿌리고 가거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도 했는데, 보상팀 직원들은 이러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한 푼의 보상금도 허투루 써선 안 된다는 사명감이 강했다.

■ 무엇이 '보상 괴물'을 만들었을까

그래서 과거 LH 직원들과 함께했던 '투기꾼과의 전쟁' 추억을 되돌아보니, 이번 LH 직원들의 투기 논란이 더욱 씁쓸하다. 무엇이 이들을 투기 유혹에 빠지게 했을까.

"요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하면서 부동산에 (투자가) 몰리는 판국에 LH 1만명 넘는 직원들 중 광명에 땅 사둔 사람들이 이번에 얻어걸렸을 수도 있다"는 LH공사 직원의 블라인드 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강남권 아파트로 수억~수십억을 번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참모가 '직' 대신 '집'을 선택한다. '대통령의 입'은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관사에 공짜로 살면서, 10억원 넘는 '영끌' 대출로 '재개발 딱지'를 샀다. '노후대비용'이라는 명목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된다)

지금 집 한 채 갖지 않으면 대대손손 '무주택 계급'으로 추락할 것이란 불안감. 전세마저 실종되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단기 셋방살이로 전전할 것이란 위기감.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고 부동산으로 승승장구하는 고위공직자들을 보는 박탈감.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부적절한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들을 신도시 투기 유혹에 내몬 건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 김수홍 기자

김수홍 기자(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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