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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썰] "램지어 논문에 한국 대학들은?"...미국 노교수의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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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자들의 '낮은 목소리' 아쉬워

"한국의 모든 대학이 하버드 로스쿨과 교수진에 공개적으로 보이콧을 선언할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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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보일 일리노이 법대 교수 〈사진=일리노이대 홈페이지〉




프란시스 보일 일리노이 법대 교수와의 인터뷰 도중 이 말을 들었을 때 잠시 멈칫했습니다. 인권 변호사이자 국제법 전문가로 올해로 70세인 그는 "램지어 교수와 하버드 로스쿨이 악의적으로 전쟁 범죄 사실을 지우려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국내 대학이나 학계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건 사실입니다. 일본학 전공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이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호사카 교수는 지난 1일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인 이옥선 할머니와 함께 "역사 왜곡을 멈추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국내 학자들이 따로 성명을 낸 건 없었습니다."

그는 "부실 회계 의혹 등으로 현재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활동이 위축된 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위안부 피해 관련 연구자들이 많지 않고, 전문가들은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불이 났는데, 안 막으면 다 타는 것처럼 그냥 넘길 일은 아니"라는데 힘을 실었습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보자면 램지어 규탄 움직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건 한국계 학자들입니다. 몇 명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한국계 2세인 마이클 최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작성해 전세계 경제학자들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https://chwe.net/irle/)는 이번 사안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성명과 관련 동향이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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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최 교수가 운영하는 성명 사이트. 현지시간 5일, 지금까지 3110여명의 학자들이 램지어 규탄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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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학술지 측에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데 힘을 쏟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진희 이스턴일리노이주립대 사학과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국제법경제리뷰(IRLE;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편집자들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편집자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의 결점을 알리고, 설득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JTBC 취재진에 "반인류적 범죄 사실을 번복하려 했던 교수나 학술지의 시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논문 출간을 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전에도 케임브리지대를 설득해 램지어 교수가 쓴 논문(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관련)이 왜곡된 그대로 학술지에 실리는 일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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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최 UCLA교수(좌)와 이진희 이스턴일리노이대 교수(우). 〈사진=각 대학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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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논문을 출간할 예정인 국제법경제리뷰(IRLE) 편집장인 조너선 클릭은 이번 '싸움'의 상대를 학자들로 한정했습니다. 그는 한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램지어 논문 철회하라는 메일을 수없이 많이 받았지만, 다행히도 학자가 보낸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3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램지어 논문을 철회하라는 성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메일을 안 보냈다 한들, 메일만 안 보냈다뿐이지 더 공식적인 방식으로 논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학자들끼리의 일"이라는 클릭 편집장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그렇게 나오는 만큼 학자들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학계의 '낮은 목소리'가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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