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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데스크 칼럼] 일상 회복과 백신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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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102번째. 한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102번째 접종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한국의 백신 접종이 늦었다는 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블룸버그 통신의 백신 트래커 자료를 보면 지난 5일(현지시각) 기준으로 111개국에서 2억7900만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이 접종됐다. 2회 접종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하면 전 세계 인구(78억명)의 3.5%만이 백신 접종을 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의 접종 횟수가 8257만회로 가장 많다. 이어 중국(5250만회), 유럽연합(3594만회), 영국(2194만회), 인도(1771만회) 순이다. 접종률(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로 93.76%다. 이어 인구 9만8000명의 세이셸(84.23%), 아랍에미리트(57.72%)가 뒤를 잇고 있다. 미국은 접종률이 24.87%, 영국은 32.86%, 유럽연합은 8.32%다.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는 접종률이 각각 3.75%, 1.30%밖에 되지 않는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접종률이 한 자릿수다. 집단면역을 갖추려면 인구의 70% 정도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금의 속도로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전 세계 인구의 75%가 접종받는 데 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투자은행 UBS는 올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백신 접종을 받는 국가는 10개국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는 백신 물량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빅 파마(Big Pharma)’만으론 전 세계에 필요한 백신을 적기에 공급하기 어렵다. 한국의 백신 접종이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백신 주권’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은 왜 코로나19 백신을 못 만들까. 못 만드는 건 아니다. 지금도 제넥신, SK바이오사이언스, 진원생명과학 등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백신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임상 시험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3상을 하려면 수만명의 시험군이 필요하다.

백신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것도 임상 시험 때문이다. 빅 파마가 초고속 작전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은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지원한 예산을 충분히 활용했다. 모더나 백신 개발에는 미국 정부가 약 3조원을 지원했다.

아쉬운 대목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한국 정부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내년 국산 1호 백신 접종을 목표로 배정한 예산은 2600억원 정도다.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기업들은 임상1상과 임상2a상을 진행 중이다. 3상을 하려면 백신 투여군과 위약 대조군을 대규모로 모집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지 않은 국내 여건상 국내 임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사실상 국산 1호 백신 개발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선 백신 자력 개발과 생산은 필수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각국의 백신 주권 경쟁은 점점 치열해질 것이다. 백신이 없으면 일상도, 국가 경제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우린 지난 1년간 똑똑히 경험했다. 백신 주권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이창환 정보과학부장(ch2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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