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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위구르 집단강간" 中 때리는 英, 일본과 가까워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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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RG]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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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동맹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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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두 섬나라가 손을 잡았습니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 그리고 영국처럼 제국이 되기를 꿈꾸던 일본이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20세기 동북아의 판도를 뒤흔들고,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영일동맹(Anglo-Japanese Alliance)이죠.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을 고리로 밀착하는 모습이 마치 120년 전 상황이 재현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20세기 초 패권국 영국이 일본과 손을 잡은 건 러시아의 팽창을 경계해서였습니다. 최근의 밀착 역시 패권국 미국이 중국의 굴기(倔起)를 막기 위해 동맹간 결속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英 항모 일본 근해에 이례적 장기 파견



미일동맹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동북아 지정학의 상수였습니다. 여기에 일찌감치 일본과 동맹관계를 청산했던 영국까지 부쩍 일본에 눈을 돌리고 있는 모습은 주목됩니다. 지난 2015년 브렉시트 결정 전부터 영국은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안보 협력국으로 지칭했고 이후 차츰차츰 밀착해왔습니다.

지난달 초 영국과 일본은 외무·국방 장관 '2+2 회의'를 열고, 올해 인도 태평양지역에서 미·영·일 3국 공동 훈련을 하기로 했습니다. 영국은 이 훈련을 위해 2017년 건조한 최신예 항공모함이자 영국 해군 최대급 함정(길이 280m·만재 톤수 6만5000t)인 '퀸 엘리자베스'를 일본 근해에 장기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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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화상 회의로 진행된 영국과 일본의 2+2 회담.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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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항공모함이 동북아 근해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하는 건 이례적입니다. 그동안 이 지역에는 미국과 주변국 이외 나라의 항공모함이 장기간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4면이 바다인 영국이 아시아로 눈을 돌릴 때 일본과 밀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에는 일본의 지정학적인 위치, 즉 항모를 장기간 파견할 때 정박과 지원이 용이하다는 요소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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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포츠머스항에 정박 중인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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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견제 나선 '앵글로스피어', 日과 밀착



흥미로운 건 이런 양상이 이른바 '앵글로스피어'(Anglosphere)의 부활 움직임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앵글로스피어는 영어를 사용하며 비슷한 문화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권역을 일컫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죠. 정보 기밀을 공유하는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구성하는 나라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뭉치게 만드는 계기는 중국의 부상입니다. 패권국 미국이 신흥 패권을 꿈꾸는 중국을 견제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보입니다. 여기에 영국도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아시아로 눈을 돌리며 대중 견제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올들어서도 신장 위구르의 소수민족 탄압을 BBC가 앞장서 폭로하고, 중국의 반발에도 홍콩인에 이민 문호를 활짝 열었죠. 호주도 만만치 않습니다. 원자재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손해를 감수하며 큰 손 중국과 치고받는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지난해 홍콩과 화웨이 문제를 들어 중국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끈끈한 연대는 같은 서방 국가지만 중국이 관련된 문제에선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독일, 프랑스와 대조되는 행보입니다.

그런데 앵글로스피어 국가들이 약속이라도 하듯 일본과 밀착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에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120년 전,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말(馬)을 찾고 있을 때 일본이 이미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에 적극적으로 맞서 온 전력도 반중 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영국에 '신뢰감'을 주는 요인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美 싱크탱크 "日 포함 '식스 아이즈'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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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5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 [C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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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간 결속은 우선 '정보 동맹'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일본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일본이 포함된 '식스 아이즈'(Six Eyes) 구축을 위해 워싱턴과 도쿄가 진지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제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5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부시 행정부)과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지난 4차례의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는 미일동맹 강화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CSIS도 보고서를 발표하며 "해결책: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의 공식 멤버가 될 준비가 됐다"고 편집자의 주를 달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혈연 동맹'으로 볼 수도 있는 앵글로색슨 족(族) 기반의 국가 모임에 일본이 공식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분위기인 것이죠. 설령 식스 아이즈가 공식화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얘기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최근의 역내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즈도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에 대해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려는 의지는 강하지만 능력이 약하다는 게 장애물"이라면서도 "어쨌든 일본은 이들 동맹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식스 아이즈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미국이 띄운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협력체)가 대표적으로 거론되죠. 일본이 사실상 쿼드의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도 쿼드 참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영국은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에 한국·호주·인도를 더한 D10(민주주의 10개국) 협의체도 제안해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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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린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 항모 관련 행사에 참석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사열을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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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그레이트 게임, 日에 '재무장' 기회?



20세기 초 일본이 빠르게 열강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전방위적 지원 덕분입니다. 영국은 19세기 내내 러시아와 유라시아 패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였습니다. 수많은 식민지 관리와 보어전쟁을 치르느라 남하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자원이 부족했던 영국은 동북아에서 일본을 파트너로 삼아 러시아를 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군사력을 증강,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등 제국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21세기 앵글로스피어-일본의 밀착은 일본에 재무장의 명분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태평양 전쟁 이후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가 된 일본은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저서 『일본의 재무장』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경찰국가 역할 약화' 등이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막강한 일본을 탄생시킬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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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헌법 발포식. 이 의식으로 일본 천황은 허수아비인 국가 제사장에서 명실상부한 국가원수로 발돋움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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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CNN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지난해 미국의 선박이나 항공기 방어를 위해 총 25번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는 전년(14번) 대비 무려 78% 증가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CNN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두 군대의 통합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다"고 논평했습니다.

4일 미 국무부는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 당국자가 중국 해경의 무기 사용법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내용의 심의관급 협의를 했다고 밝히면서 "미일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는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장관 회담인 2+2 회담 개최도 논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오는 15일 방일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장관의 방일 기간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을 동시에 만나 인도·태평양 지역 문제를 논의한다고 합니다. 이어 한국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국무부 연설에서 중국 견제를 "21세기 최대 지정학적 시험"이라고 언급한 블링컨은 아마도 120년 전 영국처럼 '그레이트 게임'을 구상하는 듯합니다. 그가 '제2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일본, 그리고 한국에 요청할 역할이 무엇일지 주목됩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gnang.co.kr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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