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의 단위농협 대출 문제 없나
신도시 지역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단위농협(상호금융)인 북시흥농협 한 곳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은 것과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지난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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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실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북시흥농협 LH 직원 대출 관련 현황'에 따르면 LH 직원 9명의 대출액은 43억1000만원이었다. 담보인정비율(LTV)은 중복 대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61~70%에 달했다. 이중 절반이 최대 비율인 7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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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에 LTV 70% 논란에 "정상 대출"
LH 직원들이 매입한 토지는 대부분 논과 밭이다. 이중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맹지'도 다수 포함됐다. 맹지는 길과 연결이 안 돼 활용도가 떨어지는 땅이다. 일반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개발 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잘 구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맹지에 어떻게 최대 한도의 대출이 가능했을까.
지난 4일 만난 북시흥농협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LTV 70%를 적용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대출이 나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전에 LH 직원들과의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냐"는 물음에 "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소재 농지에 작물이 매말라 있는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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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단위농협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의견이 크게 달랐다. 기자의 문의에 "일반인들은 맹지에 LTV 70%를 적용한 대출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나왔다. 대출 조건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현장 실무자들의 다른 의견은 북시흥농협의 대출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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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지침에 '환가성 없는 맹지'는 담보 제한
농협 임직원들이 대출 업무를 할 때 따르는 표준기준인 '여신업무방법서'는 직원들이 대출을 검토할 때 담보취득을 제한하는 부동산들을 명시했다. 해당 지침의 제2편 2장 2절 1조는 다음 각호의 부동산은 ‘예외 취급사유’가 없는 한 담보로 취득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압류·가압류·가처분 등 채권보전에 지장을 초래할 등기가 있는 경우(1호)부터 학교·유치원용지(4호), 군사시설보호구역내 부동산 중 환가성이 낮아 담보취득이 부적격한 것(7호)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 중 15호에 '환가성이 없는 맹지'를 명시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있으면서 담보의 취득과 관리, 다른 매수자에게 처분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면 환가성이 있다고 본다.
북시흥농협 본점. 여성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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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같은 조건 대출 어려워"
다른 지역 단위농협 관계자 A씨는 "규정상 맹지는 담보취득 제한 부동산으로 분류된다. 부실인 경우 담당자 과실이 커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검토해 취급해도 LTV 70%를 꽉 채우는 건 매우 드물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도 나라면 40~50%는 절대 넘기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맹지는 환가성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환가성 여부를 판단하는 건 주관적이고 재량의 영역으로 담당자 마음이다. 채무자가 LH 직원들이면 뭔가 있겠지 싶어서 교묘하게 법 테두리 안인 재량을 활용해 특혜를 준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맹지를 시가보다 높게 산다면 뭔가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LH 직원은 뭔가 알고 그러는 거겠지'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다만 그냥 일반인들이 오면 이렇게 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대출이 이루어진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여성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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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따라 사는 게 현명” 분위기도
이번 투기 의혹을 두고 단위농협 직원들 사이에서도 "정황상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이런 조건으로 대출을 안 해줄 것 같다"는 의견과 "규정상 문제 될 것은 없어서 나도 해줬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A씨는 "LH 직원들만의 일이 아니다. 일부 지역 공무원,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이번처럼 정보를 알고 지역 농협에서 대출을 받는 일은 예전부터 많았다더라"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법이 아니라면 ‘모르는 척 따라서 땅을 사는 게 현명하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논란 이후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3기 신도시 관련 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계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토지 거래 전수조사를 한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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