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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길 끊긴 땅 최고한도 대출 “LH 직원에 교묘한 재량특혜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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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의 단위농협 대출 문제 없나

"사전 정보를 나누는 등 편법이 없었다면 교묘하게 재량껏 특혜를 준 거다."

신도시 지역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단위농협(상호금융)인 북시흥농협 한 곳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은 것과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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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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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실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북시흥농협 LH 직원 대출 관련 현황'에 따르면 LH 직원 9명의 대출액은 43억1000만원이었다. 담보인정비율(LTV)은 중복 대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61~70%에 달했다. 이중 절반이 최대 비율인 70%였다.



맹지에 LTV 70% 논란에 "정상 대출"



LH 직원들이 매입한 토지는 대부분 논과 밭이다. 이중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맹지'도 다수 포함됐다. 맹지는 길과 연결이 안 돼 활용도가 떨어지는 땅이다. 일반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개발 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잘 구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맹지에 어떻게 최대 한도의 대출이 가능했을까.

지난 4일 만난 북시흥농협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LTV 70%를 적용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대출이 나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전에 LH 직원들과의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냐"는 물음에 "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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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사들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소재 농지에 작물이 매말라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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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단위농협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의견이 크게 달랐다. 기자의 문의에 "일반인들은 맹지에 LTV 70%를 적용한 대출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나왔다. 대출 조건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현장 실무자들의 다른 의견은 북시흥농협의 대출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농협 지침에 '환가성 없는 맹지'는 담보 제한



농협 임직원들이 대출 업무를 할 때 따르는 표준기준인 '여신업무방법서'는 직원들이 대출을 검토할 때 담보취득을 제한하는 부동산들을 명시했다. 해당 지침의 제2편 2장 2절 1조는 다음 각호의 부동산은 ‘예외 취급사유’가 없는 한 담보로 취득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압류·가압류·가처분 등 채권보전에 지장을 초래할 등기가 있는 경우(1호)부터 학교·유치원용지(4호), 군사시설보호구역내 부동산 중 환가성이 낮아 담보취득이 부적격한 것(7호)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 중 15호에 '환가성이 없는 맹지'를 명시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있으면서 담보의 취득과 관리, 다른 매수자에게 처분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면 환가성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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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시흥농협 본점.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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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같은 조건 대출 어려워"



다른 지역 단위농협 관계자 A씨는 "규정상 맹지는 담보취득 제한 부동산으로 분류된다. 부실인 경우 담당자 과실이 커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검토해 취급해도 LTV 70%를 꽉 채우는 건 매우 드물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도 나라면 40~50%는 절대 넘기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맹지는 환가성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환가성 여부를 판단하는 건 주관적이고 재량의 영역으로 담당자 마음이다. 채무자가 LH 직원들이면 뭔가 있겠지 싶어서 교묘하게 법 테두리 안인 재량을 활용해 특혜를 준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맹지를 시가보다 높게 산다면 뭔가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LH 직원은 뭔가 알고 그러는 거겠지'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다만 그냥 일반인들이 오면 이렇게 해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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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대출이 이루어진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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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따라 사는 게 현명” 분위기도



이번 투기 의혹을 두고 단위농협 직원들 사이에서도 "정황상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이런 조건으로 대출을 안 해줄 것 같다"는 의견과 "규정상 문제 될 것은 없어서 나도 해줬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A씨는 "LH 직원들만의 일이 아니다. 일부 지역 공무원,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이번처럼 정보를 알고 지역 농협에서 대출을 받는 일은 예전부터 많았다더라"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법이 아니라면 ‘모르는 척 따라서 땅을 사는 게 현명하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논란 이후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3기 신도시 관련 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계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토지 거래 전수조사를 한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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