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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군대서 찾던 말표…맥주로 팔았더니 2초에 1캔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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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표 구두약(왼쪽), CU 말표 맥주(오른쪽) [사진 제공 = 말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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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표가 아직도 살아있어?"

2013년 갓 최고경영자(CEO)가 된 30대 대표의 가슴에는 이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다복한 직원들과의 모습이 보기 좋아 "어디 회사냐"고 물었던 종업원도 직원들도 숙연해진 분위기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더 이상 구두약을 쓰지않는 20대들이 '말표 맥주'를 찾아 편의점을 돌아다닌다. 창립 64년, 국내 구두약 1위 기업 말표산업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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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교 말표산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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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표흑맥주, 전체 매출 4위 신기록

정홍교 말표산업 대표는 요즘 포털사이트에 '말표'를 검색해보는 재미에 산다. 오랜만에 쏟아진 관심이 마냥 신기하다고만 했다. 정 대표는 "어릴적 추억이 담긴 구두약 브랜드를 다시 만나 반갑다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잊지 않아주셔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추억의 말표를 소환한 건 CU와 말표산업, 국내 브루어리가 협업해 만든 '말표 흑맥주'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말표는 구두약'이라는 인식이 강해 식품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면 돌파를 택했다. 구두약을 연상시키는 흑맥주로 남성층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말표 맥주는 지난해 10월 출시 3일만에 초도물량 10만개가 모두 완판됐다. 수제 맥주 중에서는 처음으로 '칭따오'를 제치고 편의점 전체 맥주 매출 4위에 올랐다. 정 대표는 "오래된 기업도 지식재산권(IP)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 화장품 사업도 진출…"韓 코닥될 것"

말표 맥주는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할뻔 했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사명을 MP산업, 마스(Mars) 등으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사명을 바꿨으면 지금의 말표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가 오래된 기업만이 지닌 헤리티지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가업을 이어받은 정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사업 다양화에 나섰다. '구두약만 팔아선 망한다'는 판단에서다. 2013년에는 화학 제품 제조 경험을 살려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월트디즈니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출시한 왁스 '투비(2VEE)'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말표 립밤부터 풋크림, 휴대폰 케이스, 후드집업 등 의류까지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말표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일까. 말표산업에 따르면 로열티는 제품 출고가의 2~10% 수준이다. 정 대표는 "뉴트로 트렌드는 길어야 5년"이라며 "필름 카메라 산업은 죽었지만, 코닥은 브랜드로 살아남았다. 말표 만의 자체 히트 상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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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베트남의 한 구두 가게에 말표 구두약이 진열돼있다. [사진 제공 = 말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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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약 매출 비중 5%, 포기 안 해"

사실 말표산업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건 건물관리용품이다. 매출의 70~80%는 바닥 박리제와 유리세정제 등 B2B 사업에서 나온다. 국내 구두약 점유율 1위지만, 구두약 매출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그만큼 오늘날 가죽 품질이 좋아지고, 구두 값이 싸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베트남이나 러시아에서 말표 구두약이 더 많이 팔린다. 말표산업도 경영상의 이유로 100명 이상이었던 직원 수를 50명까지 감축했다. 팔면 팔수록 적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말표산업은 적자일지라도 구두약 사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한다.

정 대표는 "일반 회사라면 구두약은 가져가선 안 될 사업이지만, 구두약이 꼭 필요한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아버지 구두를 닦던 소년이 군대를 다녀오고 첫 면접을 보는 순간마다 말표 구두약이 있었던 것처럼 국민 브랜드로 오랫동안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신미진 매경닷컴 기자 mjsh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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