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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녹화 끝이 카운트다운 시작’ 불 꺼진 편스토랑 스튜디오 뒷편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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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면·파래탕면·꼬꼬덮밥 등 잇따라 대박
녹화 후 2주, 레시피 개발 위해 밤샘 작업
역대 가장 비싼 전복감태김밥, 예상밖 매출 1위
셰프 호평에도 가맹점주 '갸웃'하면 개발팀 고심
한국일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상품개발팀 직원들이 품평회를 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이 강화되기 전인 지난해 가을 대면 품평회에서 김소희(맨 오른쪽) 상품개발자(MD)가 '신상출시 편스토랑' 촬영 중 연예인이 만든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방역을 위해 최근엔 품평용 상품을 퀵서비스로 받아 시식하고 있다. BGF리테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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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럽고 실제로 맛도 있는데 ‘저걸 어떻게 편의점 상품으로 만들까’ 싶어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마장면, 미트파이, 파래탕면, 꼬꼬덮밥 등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는 KBS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의 인기는 방송 다음날 편의점에서 바로 확인된다. ‘요리 좀 하는’ 스타의 필살 메뉴를 편의점 신상품으로 개발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덕분에 소비자는 CU에서만 파는 한정판 이색 메뉴를 맛보기 위해 흔쾌히 편의점을 찾는다. 편스토랑 우승 메뉴는 2019년 10월 방송 이후 현재까지 22개가 출시돼 누적 판매량 1,000만개에 육박하는 인기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CU 상품기획자(MD) 김소희 책임은 매번 이런 시장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7일 전화 인터뷰에 응했을 때도 "무사히 2주가 지나갔네요"라며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 책임은 “새로운 메뉴가 우승작으로 채택돼 축제 분위기인 스튜디오를 보면서도 상품개발팀 7명은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한다”며 “녹화가 끝나는 동시에 MD의 초시계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출연자가 비싼 재료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우승 메뉴를 대량 생산 공정과 편의점 가격에 맞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타들의 요리 경연을 지켜보던 출연자 이경규씨조차도 “MD는 큰일 났어”라며 스튜디오 뒷편에서 마음 졸일 이들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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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일 방송된 전복 토너먼트전에서 심사를 지켜보던 출연자 이경규씨가 “상품기획자(MD)는 큰일 났어”라며 스튜디오 뒷편에서 마음 졸일 이들을 걱정했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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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은 했는데... 상품화는 ‘난감하네’


대표적으로 가수 겸 배우 이정현씨의 수란덮밥은 상품개발팀이 출시 열흘 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궁리한 메뉴다. “이정현씨가 처음에 달걀덮밥으로 만들었는데 심사위원들이 ‘달걀 대신 수란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바뀐 메뉴예요. 스튜디오 뒤에서 ‘저거 우승하겠다’ 싶은 감이 오더라고요. 수란의 모양을 유지한 채 도시락에 담아내는 방법을 찾다가 가정간편식(HMR)으로 출시했습니다.”

오랜 상품개발 노하우로 다져진 업체 풀이 넓어 원래 알고 있던 업체에서 수란을 어렵지 않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달걀 껍질을 깨지 않은 채 알계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수란을 진공포장해 수란덮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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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F리테일 상품개발팀 김소희 책임은 원래 레시피대로 전복을 두툼하게 넣으면 가격이 1만3,000원까지 나왔다”고 전복감태김밥 개발 당시를 회상했다. BGF리테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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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원짜리 김밥 팔릴까? ‘가격 대신 품질’ 통했다


8회 우승메뉴인 배우 오윤아씨의 ‘전복감태김밥’은 편의점 30년 역사상 가장 비싼 김밥으로 꼽힌다. 김 책임은 “전복감태김밥은 원가계산을 여러 차례 해봐도 2,000~3,000원 선인 김밥 평균 가격의 3배를 훌쩍 넘었다”며 “원래 레시피대로 전복을 두툼하게 넣으면 가격이 1만3,000원까지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고 메뉴의 주재료인 전복과 감태를 저렴한 재료로 대체하면 상징성이 사라질 수 있어 고민 끝에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완도전복김밥(8,900원)과 가격대를 맞춘 ‘감태마요김밥(3,900원)’ 두 가지 메뉴를 출시했다. 가격 대신 품질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모험이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두 메뉴는 용기형 김밥 전체 매출 1위를 기록하며 ‘편의점에서도 프리미엄 상품은 통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호텔 셰프보다 가맹점주 평가에 무게추


시청자에겐 낯설지만 가장 입김이 센(?) 심사위원으로 김 책임은 가맹점주를 떠올렸다. 그는 “아무래도 출연한 편셰프(신메뉴를 개발한 출연자)는 욕심이 있으니까 화려한 데코레이션에 신경을 쓰고, 호텔 셰프인 심사위원이 극찬하는 일도 있다”면서 “하지만 편의점을 찾는 고객은 비싸고 양이 적은 음식을 사러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객을 1차로 만나는 점주님이 ‘편의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예능과 접목한 편의점 상품개발이지만 결국 고객 입장이 가장 우선이라는 얘기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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