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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여성기업에 투자해야 할 이유, ‘젠더 렌즈’ 쓰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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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의 날]

벤처캐피탈 옐로우독·소풍이 말하는 여성 창업기업과 투자수익


한겨레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2017년 3월7일 금융회사들의 여성 이사진 확대를 촉구하는 뜻으로 미국 뉴욕 월가의 상징인 황소 동상 앞에 세워진 ‘황소에 맞선 소녀상’을 한 남성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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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있는 투자자라면 더 큰 성과를 가져다 줄 여성 창업가에게 당연히 투자하죠.”

충분한 능력을 갖췄지만 젠더를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생기는 ‘유리천장’은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강고하게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연간 창업기업동향을 보면, 지난해 여성 창업기업 비율은 전체의 46.7%(69만3927개)였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성장의 핵심인 투자 유치와 관련한 수치를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스타트업 미디어 스타트업레시피의 보고서 ‘스타트업레시피 투자리포트 2020’를 보면, 지난해 투자를 유치한 여성 창업기업은 전체의 6.6%인 54건에 그쳤다. 투자 받은 금액도 총 3313억원으로 전체의 8%에 머물렀다.

재무 성과와 사회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를 내걸고 있는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 소풍)와 ‘옐로우독’은 지난 2018년 ‘젠더렌즈 투자’를 도입했다. 이 투자는 투자자가 젠더편향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관행을 인지하고, 젠더평등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여성이 창업하거나 공동대표로 있는 기업이나, 여성과 관련된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에 투자를 한다. <한겨레>는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이들 투자사에 지난 3년 간의 젠더렌즈 투자의 성과와 소회, 앞으로 방향성 등을 들었다.

옐로우독, 이제는 ‘젠더렌즈 투자’를 기본으로


2018년 12월, 옐로우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성 창업가 투자 전용펀드 ‘힘을싣다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좋은 기업을 발굴해 투자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창업 기업에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익성도 좋았다”며 “별도의 여성 창업가 펀드 운용은 좋은 투자 전략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풀무원, 유니베라 등이 출자한 이 펀드는 여성 기업가인 민금채 대표가 창업한 식물성 고기 제조·판매기업 ‘지구인컴퍼니’ 등 9개 기업에 투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옐로우독은 앞으로 여성 창업자뿐만 아니라 여성 소비자, 노동자까지 더 넓은 영역을 젠더렌즈를 통해 보기로 했다. 제 대표는 “여성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는 기업은 사업을 더 잘 할 수 있고, 여성 노동자에게 좋은 기회 제공하는 기업은 더 훌륭한 재능이 있는 이들을 확보할 수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평가 받는 이들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은 투자사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젠더를 고려한 투자가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경험칙과 문제의식 연장선 위에서 내려진 방침인 셈이다.

때문에 제 대표는 “젠더렌즈 투자는 실력있는 투자자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투자자들이 의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려고 하진 않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포함한 세상의 질서가 표준 성별을 남성으로 상정하고 있기에 여성 등 소수 젠더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기가 쉽죠. 따라서 젠더렌즈를 쓰면 안 보이던 시장 기회가 보입니다. 좋은 투자자라면 젠더렌즈를 쓰지 않아도 여성 관련 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 창업가에겐 더 적은 투자금이 주어지지만 더 큰 이익을 냅니다”


여성 창업자에게 더 적은 투자가 이뤄지는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2017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월간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창업자들은 성별에 따라 벤처캐피탈리스트에게서 다른 질문을 받는다. 남성에게는 주로 잠재력을 묻고 여성에게는 손실 가능성을 묻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 차이는 여성 창업자들이 남성보다 7배 적게 투자받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벤처투자업계에 여성 투자심사역이 적은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세계 최대의 여성 벤처캐피탈리스트 커뮤니티 ‘위민 인 브이시’(Women in VC)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의 여성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전체의 4.9%에 불과하다. 한국의 여성 심사역 비율도 7% 정도로 파악된다.

여성에게 투자를 하면 더 많은 수익이 난다는 보고도 있다. 2018년 6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이 펴낸 보고서는 “여성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는 평균 93만5천달러로 남성(212만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 창업기업은 5년 동안 73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남성(66만2천달러)보다 10% 더 많이 수익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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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들이 ‘젠더렌즈’ 쓴다면…”


투자사 소풍은 2018년 3월 국내 최초로 ‘젠더렌즈 투자’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뒤, 지난 3년 동안 젠더렌즈 투자 실적은 오르락 내리락이다. 지난 2018, 2019년에는 전체 투자의 33.3%, 50%를 여성 창업기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2019년 말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메디아티’와 합병이 결정되고 투자 방식을 본계정 투자에서 펀드결성 방식으로 바꾸면서 지난해 젠더렌즈 투자 비율이 20%로 뚝 떨어졌다. 이 회사의 홍지애 투자심사역은 “젠더렌즈 투자의 필요성을 잘 아는 만큼, 어떻게 하면 젠더렌즈 투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지난해 투자 실적을 돌아보며 내부적으로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달 기준 투자를 완료했거나 검토 중인 기업 4곳 중 3곳이 여성 창업”이라며 “작년의 투자를 반성하고 심기일전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그동안 젠더렌즈 투자의 성과로 높은 후속 투자율을 꼽았다. 소풍에서 투자 받은 여성 창업가들이 연속해서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비율은 50%로 소풍 전체 평균치인 43%보다 높다. 여성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소재도 장애인과 관련된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기술 기반 창업을 하는 식으로 다양해지고 있다고도 했다. 홍 심사역은 “투자 생태계에서 젠더 감수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체감한다”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각종 심사에서 여성 심사위원 비중이 낮거나 젠더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또 젠더렌즈 투자를 직접 해보니, 사업 내용이나 조직 문화에도 젠더 관점이 녹아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다양한 성적 지향도 폭넓게 고려해야죠. 임팩트 투자는 혼자서 할 때 보단 여럿이 함께할 때 더 큰 사회 변화를 더 빨리 만들 수 있습니다. 벤처투자사와 각종 창업지원센터 등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한 참여자들이 함께 젠더렌즈를 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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