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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죽어도 서울’서 ‘곳곳이 중심’으로…지역 도시들이 뭉치는 이유 [흑백 민주주의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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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시티, ‘균형발전’ 답일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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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기준 전국 소멸 위험 읍면동 현황.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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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10일 광주시청. 이용섭 광주시장이 깜짝 발언을 했다. “지금처럼 사안마다 각자도생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면 공멸뿐이다. 광주·전남의 행정통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나흘 뒤인 9월14일 대구시 온라인 확대간부회의.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경북 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말했다. “지난 40년간 행정이 나뉘어 있었지만 대구와 경북의 시·도, 군·구가 따로따로 해서는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광역경제권으로의 통합이 시대적 추세이고 소명이다.”

‘메가시티’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화두다. 메가시티는 ‘인구 1000만 이상의 매우 큰 도시’를 이르는 말이다. 국내에선 행정적으로는 구분되나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이 연계된 복수의 도시 권역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행정구역 통합도 함께 논의된다.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으로 ‘동남권 메가시티’가 주목을 받았지만 부·울·경 외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청 지역에도 메가시티 논의가 있다.

각 지자체는 메가시티가 지역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전략이라고 본다. 지방에 거대도시를 만들어 수도권과 맞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모든 지역을 고르게 발전시킨다는 기존 균형발전 방식과는 배치된다. 왜 지역은 메가시티를 이야기하는가.

지방소멸은 한국공멸…메가시티 논의의 뿌리

역대 정부 노력에도 지방 위기 심각
‘소멸 위험’ 시·군·구 105곳 달해

“시·도 단위 균형발전 전략으로는 이제 힘들겠다는 걸 모두가 피부로 느낀 것 같다.” 지난 3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경남연구원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과 초광역협력 실행 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역대 정부가 지방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성과가 제한적이었다는 취지다. 그는 2019년 가을부터 메가시티 구상을 언급해 왔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 정책에서 앞선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이른바 국토균형발전 3대 특별법을 입법했고, 행정중심복합도시(1곳), 혁신도시(10곳), 기업도시(6곳) 등 설립과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2011년엔 8000명이 수도권을 떠나 지방을 향했으나 지난해엔 8만8000명이 수도권으로 들어왔다. 국책기관인 국토연구원은 2019년 보고서에서 노무현 정부 정책에 대해 “한시적으로 수도권 인구분산 효과를 가져오긴 하였으나 그 규모가 크지 않고, 2019년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마무리됨으로써 그 효용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특정 도시 단위를 넘어서는 구상도 있었다. 가장 적극적인 광역협력 시도로는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5+2 광역경제권 사업이 꼽힌다. 5+2는 인구 500만명 이상인 수도권·충청·호남·대경(대구·경북)·동남권과 인구 500만명 미만인 강원·제주 권역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지방정부 간 연계·협력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각 지자체는 정부 예산을 ‘n분의 1’로 끌어오는 데 매진하는 등 이기적 행태를 보였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지난해 7월 발간한 리포트에서 ‘정책 및 사업 공간 단위와 행정구역 불일치 문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 거버넌스 구축 실패’를 역대 정부의 광역 단위 협력 사업의 한계로 지적했다.

그동안 지방의 위기는 심각해졌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 지역은 105곳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 중 97곳(92.4%)이 비수도권이다. 2014년 79곳, 2018년 89곳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소멸위험은 20~39세 젊은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절반에 못 미칠 때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지방을 떠난 인구 대다수는 2030 청년층에 해당한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소멸의 결과가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도쿄도 축소되고, 일본은 파멸한다”는 문장이 그의 결론이다. 도쿄 같은 대도시엔 젊은이가 몰리지만, 집값이 비싸고 생활비가 높아 아이를 낳지 않는다. 반면 지방은 출생률은 높지만 청년들이 떠나는 탓에 출산 가능한 인구의 절대적 숫자가 많지 않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통계청은 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84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라고 발표했다. “수도권 과밀은 심각한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은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25일 문 대통령 발언은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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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 위치한 해양대학교 실습선 선상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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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시티, 빛과 그림자

산업 생태계 구축해 일자리 창출로
권역 내 협력 있어야 성공 가능

지역 간 불균형·토건개발 우려에도
균형발전 위한 새 패러다임 될 듯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메가시티가 기존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걸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산업 생태계’ 구축 전략이라는 점에서 지방 일자리 창출에 강점이 있다고 본다. 보통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디자인 분야, 스타트업은 대도시에 입주한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베드타운이나 제조업 단지가 자리 잡는다. 메가시티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특정 경제권에서 대도시를 중심축으로 집중 육성할 수 있다고 마 교수는 말한다. 대신 대도시는 인근 지역에 제조를 맡기는 등 방식으로 산업적 연계를 맺도록 하자는 것이다. 도시 간 거리는 교통 인프라를 구축해 압축한다.혁신 대도시를 품은 거대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균형발전 주장에선 잘 논의되지 않았던 방안이다. 다른 지역의 배후로 만족하는 지자체는 없다. 현실적으로 규모가 뒷받침되지 않을 뿐 가능하다면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산업을 유치하고자 한다.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엔 전국 264곳이 신청했다. 시·도 단위로 신청을 받은 2019년 스타트업 파크 조성 공모사업엔 1곳 선정에 전남·광주·울산을 제외한 모두(14개)가 손을 들었다. 이대로라면 모두 망한다고 마 교수는 역설한다. 고만고만한 지방 여럿이 덩치를 키워도, 거대한 수도권과 같은 링에 올라서면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저자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일자리에서 찾았다. 그동안 울산·포항·거제 등의 지역에서 위기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은 제조업 단지가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기반 산업이 중시되는 등 산업구조가 변동하면서 그 수가 줄었다. 비중이 늘어난 사무직, 엔지니어, 기술직 고용 기업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의 62.2%가 수도권에 입지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서울 등지에 있어야 고용하기 용이하다. 2017년 기준 전국 연구·개발 인력 69만1000명 중 42만7000명(61.8%)이 수도권에 있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구미가 아닌 용인에 부지를 선정한 이유도 “국내외 우수 인재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위치”했다는 것이었다. 일정 수준 규모와 집중이 있어야 혁신도,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수도권이 서울을 중심으로 성장했듯, 지역에도 거점 대도시를 앞장세워 ‘제2의 수도권’을 만들자는 것이 메가시티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협력과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행정통합을 규정한 지방자치법 개정을 과거 정책과 차별화된 요소로 꼽는다. 현재 대구·경북은 행정통합을, 부산은 행정구역을 합치진 않되 광역특별연합이란 이름의 지자체 간 연대체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마 교수는 “잘게 쪼개진 현 행정단위에선 어떤 도시를 거점으로 할지, 지역 간 분배 전략은 어떻게 구상할지 논의하기 어렵다”며 행정구역 통합·개편 의의를 설명했다. 지역에서 먼저 필요를 느껴 상향식으로 추진된다는 점도 메가시티의 성공 가능성으로 거론된다. 다만 연합 등의 운영 재정은 중앙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려는 있다. 정의당은 동남권 메가시티 첫 단추인 가덕도신공항이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토건개발’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도 탄소중립과 항공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본다. 지역 거점도시를 중점 육성하다 보면 지역 내 대도시와 군소도시 사이 불균형이 커질 수 있어 메가시티가 균형발전에 외려 역행한다는 주장도 있다.

강 원장은 “지방분권 관점에서는 행정구역 개편 시 기존 시·도 단위 행정기관과 사무, 권한이 겹치는 등 복잡한 해결과제가 남는다”며 “각론으로 보면 매 건에 갈등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메가시티는 기존 균형발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면제·면제…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해 국토균형발전을 이룰 것”(박수영 의원·부산 남구갑) “선거를 앞두고 후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줄 법안”(곽상도 의원·대구 남구중구).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쳐진 지난달 26일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 엇갈린 반응이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질문은 남았다. 국가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치라는 주장과 졸속 입법, 경제성 미비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특히 특별법의 ‘필요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판단이 엇갈렸다.

예타는 사회간접자본 등 대규모 정부 재정 투입이 예상되는 신규 사업에 대해 경제성과 재원조달 방법 등을 검토해 사업성을 판단하는 절차다.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사업, 정보화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을 대상으로 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선심성 사업 등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고자 도입됐다.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도 정치권은 종종 예타를 ‘패싱’했다. 주된 이유는 균형발전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지난해까지 88조원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60조원), 박근혜 정부(24조원) 때보다도 높은 수치다. 2019년 1월 ‘지역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총 24조원 규모의 전국 23개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정했다.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예타 통과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실이 직전 5년 동안 종합평가(AHP) 0.5 미만으로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27건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 사업은 82.4%의 통과율을 보인 반면 비수도권은 69.6%의 통과율에 그쳤다.예타가 지역균형을 고려하지 못하는 건 경제성을 무엇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예타는 경제성 분석, 정책성 분석, 지역 균형발전 분석으로 이뤄진다. 이 중 B/C(비용 대비 편익)라고도 불리는 경제성 분석이 핵심이다. B/C가 1을 넘지 못하면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성이 떨어져도 정책성·균형발전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해 예타를 통과하는 사업이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경제성은 있어야 한다. 전북연구원은 2019년 연구에서 2016~2018년 비수도권 예타사업 중 정책성 및 지역균형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통과한 사업이 18건으로 이들 사업의 평균 B/C 값은 0.93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예타 ‘패싱’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례가 쌓이면 면제 남발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4일 논평을 통해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선거 때마다 대규모 국책 사업을 검증 없이 추진하는 전례가 될 수 있음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장 인천에서는 인천공항행 GTX의 예타 면제 요구가 나왔다.

지역균형을 더 고려하도록 예타 제도를 개선할 수도 있다. 실제 도입 당시 B/C 분석만 존재했던 예타는 2003년 지역균형발전 항목을 포함한 정책성 분석을 평가에 넣었다. 지역균형발전 항목은 2006년 별도 평가 항목으로 분리돼 15~25%의 가중치를, 2019년엔 비수도권에서 30~40% 가중치를 갖도록 꾸준히 비중이 커졌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은 “인구나 인프라가 이미 일정 수준 규모를 갖췄다면 사업의 편익이 높이 평가될 수 있지만, 낙후된 지역은 (B/C) 1을 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1차적으로 예타를 진행하되, 균형발전이나 현재 기준으로 경제성이 낮지만 미래 가치를 적극 고려해야 할 사업에 대해선 지역 공청회 등 별도 절차를 추가로 두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백승찬(문화부), 윤승민(정치부) 기자
김지원(모바일팀), 조문희(사회부) 기자

<시리즈 끝>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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