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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던 나를…” 김정주, 스승 위한 눈물의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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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KAIST 총장 취임식 참석

“박사하다 잘려서 도망, 와중에 창업

이 교수님이 믿고 지원 여기까지 와”

‘힘 되면 돕겠다’ 기부 뜻도 시사

중앙일보

8일 열린 KAIST 이광형 신임 총장(가운데) 취임식에 제자인 김정주 NXC 대표(왼쪽)가 축사를 했다. 둘을 연결해 준 김영달 아이디스홀딩스 대표(오른쪽)도 참석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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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교수’로 유명한 이광형(67)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8일 오후 신임 총장으로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식엔 그의 제자인 김정주(53) NXC 대표가 축사를 했는데, 단상에 오른 5분여 동안 서너차례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짧은 머리로 등장한 김 대표는 “어떻게 (축사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저하더니 KAIST와 인연을 소개했다. “(KAIST에서) 박사 하다 잘려서 도망갔다. 와중에 회사를 시작해 어찌어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학창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 KAIST의 외관이 상당히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전 보금자리에 돌아온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며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는 “KAIST에 ‘어머니 같은 따듯함’을 느끼는 이유가 이광형 총장님 덕분”이라며 “학생 생활도 성실하지 못했고,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던 나를 이광형 교수님과 (이 총장의 배우자인) 안은경 여사님께서 아낌없이 믿어주고 지원해줬다”고 회고했다. 이어 “저도 힘이 되면 돕겠다”며 KAIST에 지원할 뜻을 시사했다.

국내 게임업계 1세대인 김 대표는 1991년 KAIST 전산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3년 뒤 넥슨을 설립했다. 93년 같은 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했지만 학업에 전념하지 못했고,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통보했다. 연구실에서 쫓겨난 그를 받아준 사람이 이광형 현 총장(당시 교수)이었다. 덕분에 김 대표는 1년여간 학창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결국 KAIST를 졸업하지 못했다. 이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퍼드대로 연수를 떠난 사이, 임시 지도교수가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만든다”고 질책하며 김 대표에게 자퇴를 요구한 것이다.

한편 이날 KAIST 제17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광형 총장은 취임식 자리에서 자신의 비전을 직접 프레젠테이션해 “괴짜 교수가 괴짜 총장이 됐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장은 취임사에서 “향후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찾고, KAIST는 이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설립 50주년을 언급하면서 “미래 50년을 위한 ‘KAIST 신(新)문화’ 조성을 위해 역량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KAIST의 신문화를 만들지, 대학을 어떻게 바꿀지 등을 PT를 활용해가며 발표했다. 그는 “KAIST의 문제는 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라며 “전공 공부할 시간을 10% 줄이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배우자”고 제안했다. 또한 “연구소 한 곳당 한 개의 벤처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부작용이 날 정도로 사업화를 지원하겠다”며 이를 위해 “하루 1억원꼴로 기부금을 유치하겠다. 오늘도 많이 벌었을 거 같다”며 웃었다.

신성철 전 KAIST 총장은 축사를 통해 “KAIST의 리더는 지성도 중요하지만 1만5000여 명의 구성원과 소통·배려하는 감성 리더십도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이 총장은 감성을 겸비한 리더”라고 했다. KAIST에 500여 억원을 기부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이사장은 “축사 몇 마디보다 이 총장을 강하게 껴안고 싶다”며 부둥켜안았다.

이 총장은 프랑스 응용과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85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 시절 ‘나의 컴퓨터를 해킹하라’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를 창조하라’는 등 독특한 시험문제를 내 유명해졌다. SBS TV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괴짜 교수’로 불렸던 박기훈(안정훈 분) 교수의 실존 모델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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