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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민학수의 All That Golf] “대담하게 쳐라” 우즈 문자 응원에… 디섐보, 호수 2번 넘기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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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아널드 파머 대회 우승

조선일보

브라이슨 디섐보가 8일(한국 시각)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퍼팅을 성공시키고 나서 포효하는 모습. ‘필드 위의 괴짜 물리학자’ 디섐보는 골프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겠다는 듯 파 5홀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샷을 두 차례나 성공하는 쇼를 펼치면서 PGA 투어 통산 8승을 달성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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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 짓는 1.8m 거리의 파 퍼팅을 성공한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뒤로 흔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 세리머니를 두고 현지 언론은 “전기 철망에 감전된 사람처럼 보였다”고 과장했다.

분명히 ‘필드 위의 괴짜 물리학자’라 불리는 디섐보는 골프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 누가 골프를 지루한 게임이라고 했나? 드라이버를 들고는 장타 대회에 나온 것처럼 호수를 넘겨 치는 377야드 샷을 펑펑 날리고, 퍼터로는 15m 거리에서도 홀에 공을 쏙쏙 집어 넣었다. 디섐보가 다시 쓰고 있는 현대 골프는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이야기를 옛말로 만들었다. 디섐보의 골프는 요즘 말로 하면 ‘예능과 다큐를 겸비한 골프’라고 할 수 있다.

8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힐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미국 골프채널은 이날 경기를 ‘디섐보 블록버스터’라고 했다. 그 말처럼 지난해 9월 까다롭기로 소문난 윙드 풋 골프장을 초토화했던 US오픈보다 더 재미있는 속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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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브라이슨 디섐보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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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속 32㎞가 넘는 강풍이 몰아치며 72명 가운데 딱 3명만 1언더파로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했다. 이날 평균 스코어는 무려 75.49타였다. 1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디섐보가 그중 하나였다. 디섐보는 4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기록하며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정상에 올랐다. 6개월 만에 우승을 추가한 디섐보는 통산 8승을 기록했다. 올 시즌 첫 2승 이상 거둔 선수가 됐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던 리 웨스트우드(48·잉글랜드)가 1오버파 73타로 1타 차 2위를 차지했다. 웨스트우드는 비거리에선 크게 뒤졌지만 베테랑다운 노련미로 전통적인 골프의 정석을 보여줬다. 코로나 사태로 이날 5000명의 팬만 입장했는데 대부분 디섐보와 웨스트우드가 펼치는 마지막 조의 ‘골프 쇼’에 흠뻑 취한 채 이들을 따라다니며 환호성을 쏟아냈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왼쪽으로 휘어지는 6번 홀(파5)은 선수의 파워와 심장을 테스트하는 홀이다. 디섐보는 치열한 우승 경쟁이 벌어지는 중에도 전날에 이어 드라이버를 빼들고 원온을 시도했다. 이날은 티샷을 377야드 보내 홀에서 88야드 떨어진 벙커에 공이 떨어졌다. 이틀 연속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았다. 웨스트우드도 이 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두 팔을 치켜 올리며 디섐보 흉내를 내는 익살을 부렸다. 홀까지 남은 거리가 256야드나 됐지만 웨스트우드도 버디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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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브라이슨 디섐보(오른쪽)와 준우승한 리 웨스트우드가 18번홀 그린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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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섐보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114㎏까지 불렸던 체중을 10㎏ 감량했다. 지난해 11월 마스터스에서 위염이 도져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아픔 때문이었다. 디섐보는 “몸무게는 줄었지만 스윙 스피드는 높아져 더욱 멀리 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대회 우승자가 입는 빨간 카디건은 골프의 전설 고(故) 아널드 파머가 즐겨 입던 스타일의 옷이다. 디섐보를 위해 엑스라지(XL) 사이즈가 준비됐는데도 꽉 끼었다.

빨간 카디건을 입은 디섐보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받았던 타이거 우즈의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우즈는 지난달 차량 전복 사고로 심각한 중상을 입어 수술 후 입원 치료 중이다. 디섐보는 “우즈가 ‘계속 싸워야 한다’ ‘아널드 파머처럼 대담하게 경기하라’는 조언을 보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나를 위해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고 했다. 그는 “우즈에게 ‘계속 앞으로 나가자. 당신은 이겨낼 것이다.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최고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답을 보냈다” 고 했다.

디섐보는 “몇 번 넘어지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카디건은 아널드 파머뿐만 아니라 우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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