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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수출·소비 살아난다고?'...화장발 한국경제 민낯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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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효과 수출 속 보복소비로 착시 일으키는 내수
사상 최저 연체율 이면엔 정부의 대출 연장 정책
'아픈 손가락' 고용도 실상은 더 악화
한국일보

지난해 4분기 이후 수출·고용· 금융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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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경제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지 1년이 지났다. 우리 경제 성장 엔진인 수출은 급감했으며 내수 시장을 떠받치는 소비도 꽁꽁 얼어붙었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면서 금융시장도 불안해졌다. 1년 전 이맘때 주식시장은 폭락했으며, 은행권 대출이 많은 중소기업과 가계도 자금 상환을 걱정해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수출, 금융시장, 소비지표는 대부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코로나19라는 큰 위기를 넘겼고 이제 본격적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개선세를 보이는 주요 경제지표를 찬찬히 뜯어보면 이는 현재 경제 사정과 상당히 괴리돼 있다. 기저효과와 정부의 일시적 정책 등 소위 '화장발' 효과로 주요 경제지표가 겉으로만 개선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①수출 증가? 아직은 기저효과 영향

한국일보

2일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모습.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이 1년 전보다 9.5% 늘며 넉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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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회복세에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최근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는 수출지표다. 하지만 이를 뜯어보면 그렇게 낙관할 수만 있는 상황은 아니다.

수출지표가 최근 개선되고는 있지만 지난해 기저효과를 등에 업은 착시효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수출액은 480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4% 늘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1월 설 연휴로 수출액이 6.6% 줄었던 데 따른 기저효과 덕분이다. 2019년 1월(461억7,000만달러)과 비교하면 고작 4.0% 늘어난 수준이며, 2018년 1월(492억달러)보다는 오히려 더 작았다.

2월 수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수출은 9.5% 증가했고, 일평균 수출은 26.4%나 늘었는 데 이 역시 기저효과를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 2월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대(對)중국 수출을 중심으로 일평균 수출액이 크게 줄어들었던 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반도체 등 정보통신(IT) 관련 품목은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달 기준 △일반기계(-5.6%) △석유제품(-15.2%) △섬유(-23.7%) 등 주력 수출 품목은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② 재정 일자리 걷어내면 더 심각한 고용

한국일보

한 여성 구직자가 5일 오후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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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0만명에 가까운(-98만2,000명) 취업자 감소세를 보인 고용지표는 그나마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지표에 '정부 일자리 사업'이라는 허수가 담겨 있는 것을 감안하면 고용지표 역시 과장됐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10개월 연속(1998년 3월~12월)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줄어든 외환위기 당시보다는 지금 상황이 나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100만개에 달하는 정부 일자리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고령층 위주의 공공 일자리 사업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고용 상황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악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에 청년·중장년층·여성을 위한 일자리 27만5,000개를 더 만든다는 대책을 담았다. 민간에서의 고용 유지, 신규 채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지원금도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실제 상황과 괴리된 고용지표는 우리 경제 현주소를 잘못 진단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③'사상 최저' 은행 연체율 속사정

한국일보

2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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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2007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내 은행의 연체율(0.28%)도 대표적 착시 지표 중 하나다. 부실 위험이 큰 것으로 간주하는 중소기업대출 연체율(0.36%)과 가계대출 연체율(0.2%)도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지표상으로는 은행 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원금 및 이자상환 유예조치'가 부실 지표를 가려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정부는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이달 말에서 9월까지로 재연장했다. 올해 1월 말 기준 전 금융권에서 만기가 미뤄진 대출 규모는 121조원(37만1,000건)인데, 원금상환 유예는 9조원(5만7,400건), 이자상환 유예는 1,637억원(1만3,200건)에 달한다.

원금은 물론 이자마저 1년 넘게 내지 못하고 있는 대출은 사실상 부실로 봐야 하지만, 이들이 정상 대출로 분류되면서 은행 건전성 지표가 좋아지는 동시에 부실 위험은 속으로 더욱 곪아가고 있다.

은행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낸 금융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기 연장 기간이 끝난 뒤 한꺼번에 찾아올 ‘부실 폭탄’이다.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쌓아두는 등 만반의 준비에 나서고 있다.

④보복소비, 경제지표에 착시 불러올라

한국일보

휴일인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이 쇼핑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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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내내 위축됐던 소비 활동이 최근 늘어나면서 이를 경제 회복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3월 첫 주말인 5~7일 현대백화점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작년 3월 첫 주말보다 109.8%나 뛰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5~7일 매출도 작년 동기 대비 각각 94%와 94.7% 늘었다.

유통업계에서는 포근한 봄 날씨에 코로나19 백신 효과 기대가 맞물리면서 1년가량 억눌린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하는 이른바 '보복소비'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갑작스러운 소비 회복을 경기반등의 전조로 보기에는 섣부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린 상황에서 보복 소비 활동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는 소비현상이 명품 등 고가 소비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가 전반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고 일부 소비에 거품이 커 낙관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 =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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