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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르포] 군경 총탄에 맞서는 시위대 무기 '물적신 통치마·드럼통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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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지말라' 윽박지르다 한국 기자 확인하자 우리말로 "감사합니다, 꼬레아"

방패로 막는 연습도…식당·상점, 시위대에 물·음식 나눠주는 연대·단결의 현장

연합뉴스

손수 만든 방패를 이용해 군경에 맞서는 훈련 중인 시위대. 2021.3.7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는 가운데 지난 7일 찾아간 양곤 노스오깔라빠 깐따야 공원의 희생자 추모제.

나흘 전 군경의 총기 난사로 숨진 10명 안팎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깐따야 공원은 1988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대규모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모객과 시위대를 구분할 수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현장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기 시작했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건장한 청년 두 명과 메가폰을 든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쫓아와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기자가 내민 명함과 여권, 스마트폰까지 확인하더니 그제야 낯빛이 달라졌다.

우리 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꼬레아"를 연발했다.

한국 드라마 인기가 상당한 미얀마에서는 우리말 인사말을 하는 젊은이들을 찾긴 어렵지 않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현재의 미얀마와 유사한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이번 쿠데타 사태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대한 반응으로 여겨졌다.

이들은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 한 명을 시위대에서 차출해 통역으로 동행시키는 호의도 보였다.

추모객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는데, 추모객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 있었다.

시위대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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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만든 방패 앞에 선 시위대. 2021.3.7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꼬아웅이라는 30대 중반의 남성은 본인을 추모행사의 경비책임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나치게 신분 검색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군부의 발포에 시위대가 불안해하고 있고, 외국인들이 우리 모습을 찍어 SNS에 무작위로 올리는 동영상을 군부가 조사해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경 발포로 인한 사망·부상자가 생기면서 시위대도 자원자를 중심으로 세 그룹으로 나누어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나 수상한 사람들을 찾아내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경비 그룹과 군경의 공격에 맞서 일반 시위대를 보호하는 방어 그룹 그리고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시위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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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포대 등으로 군경 방어막을 쌓은 모습. 2021.3.7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방어 그룹은 방어막으로 모래포대를 두 겹으로 2m가량 높이로 쌓아 올린다.

그 뒤에 30명가량이 한 조가 되어 3㎜가량 되는 두께의 철판으로 손수 만든 방패를 하나씩 들고 최루탄과 고무탄, 총탄을 막는다.

이날도 드럼통이나 철판을 자른 것으로 보이는 방패를 든 방어 그룹이 방패를 이층으로 쌓아 총탄을 막고 군경의 진입에 대항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시위대 약 1백m 앞에 자리한 이들은 '투쟁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방패를 두드리면서 구호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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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물에 적신 남성 통치마 론지와 비닐 물주머니를 놓은 모습. 2021.3.7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방어 그룹 바로 뒤에는 미얀마 남성 통치마인 론지가 도로 위에 수십장이 6차선 도로의 20m쯤에 걸쳐 가지런히 놓여있고, 각각 그 위에는 비닐 물주머니가 놓여있었다.

계속 물을 뿌려 젖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론지를 이용해 날아온 최루탄을 덮거나 물주머니를 터뜨려 최루가스가 퍼지는 걸 막겠다는 아이디어다.

중간이 잘린 노란 물통에 물을 담고 있는 시민의 모습도 보였다.

언뜻 '그리 효과가 있을까' 했지만, 맨몸이나 다름없는 시위대가 군경의 폭력에 대항해 어떻게든 피해를 줄여보려는 간절함이 그대로 녹아있는 장면이었다.

방어그룹 뒤에 시위대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서 있었다.

이들은 "우리는 하나다",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울러 1977년 발표된 팝송 '바람 속의 티끌'(Dust In the Wind)을 미얀마어로 개사한 민중가요 'Kabar Makyay Bu'(우리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를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는 1988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많은 시민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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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변 상점 주인들이 시위대를 위해 내놓은 음료수. 2021.3.7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도로변의 식당과 상점에서는 업소 주인들이 시위대를 위해 물과 음료수, 간식들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경비 그룹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계속해서 수거했다.

군경의 폭력 진압에 시위대가 '연대'와 '단결'로 맞서고 있는 현장이었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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