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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이동통신 두번 포기했던 최종현, 아들 최태원이 이어받을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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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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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종현 회장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최종현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사진제공=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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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8일 68주년 창립기념일을 맞았다. 매년 창립일마다 선친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려 온 최태원 회장에게 올해 창립기념일은 감회가 더 새로울 듯 하다. 선친에 이어 부자(父子) 경제단체장에 오른 후 처음 맡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올랐다. 4대그룹 총수가 경제단체장이 된건 최초다. 부친인 최종현 회장은 1993~1998년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부자가 모두 경제단체 회장을 맡는것도 흔치 않은 사례다. 경제계가 그만큼 안정적 성장의 시기를 보내며 주도권을 다음 세대로 넘겨줬다는 의미다.

상황은 간단치 않다. 코로나19 여파에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미중관계 등 정치·지정학적 상황도 복잡하다. 미얀마에 중국이 군을 파견하면서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떻게 전개되든 기업으로서는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정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최종현 회장이 이런 시점에 경제단체장에 오른 최태원 회장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뭘까. 최종현 회장은 최태원 회장에 앞서 이미 기업의 사회적가치를 강조한 혜안의 경영자다. 아쉽게도 고인의 뜻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행보를 통해 유추할 수는 있다.

특혜시비 트라우마에 SK는 언급 자체를 꺼리지만,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최종현 회장에게는 두 번의 큰 포기가 있었다.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SK(당시 선경그룹)는 큰 점수차로 2위 기업을 제치고 제2이동통신사업권자로 선정됐다. 최태원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결혼한 이후였다. 당연히 사돈기업 특혜 시비가 일었다. 최종현 회장은 단 한마디를 남기고 사업을 포기했다. "다음을 기약하자."

전경련 회장 취임 1년 후인 1994년엔 김영삼정부가 이통사업자 선정을 재개했다. 김영삼정부는 아예 '전경련이 주도해 사업자를 정하라'고 주문했다. 선경으로서는 최고의 기회였지만 최종현은 또 포기했다. 이번엔 "전경련 회장이 참여하면 재계 화합이 무너진다"고 했다.

선경은 결국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과정에서 경쟁입찰을 거친 후에야 이통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당 8만원이던 인수 주가가 33만5000원까지 뛰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지출에도 최종현 회장은 외려 안도했다.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증금 격이라고 여겼다.

두 번의 포기에서 최종현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재계 대표로서 화합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최고의 기회라도 재계의 화합을 깨트릴 수 있는 결정은 피해야 한다. 격동 속에 있는 글로벌 산업계의 큰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간의 화합과 협력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정유화학, 중공업으로 요약되는 시기를 넘어 이제 친환경·수소에너지, 항공우주 등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다. 글로벌 거대기업에 맞선 한국기업들의 모빌리티 동맹, 수소동맹, 에너지동맹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진다. 최태원 회장은 그 구심이 돼야 한다.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최종현 회장은 1997년 10월 폐암 말기로 수술을 받았다. 직후 청와대서 개최된 외환위기 극복 회의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나타났다. "비상조치를 곧바로 취하지 않으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고 호소했다. 11월에도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같은 말을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산소호흡기 회의를 통해 최종현 회장은 최태원 회장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기업이 원하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고 국민과 정치권에 끊임없이 직언하라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신중한 분석가이며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경영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입한 다양한 측정과 분석방식을 활용해 기업들에도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선친의 리더십에 본인의 경험을 더해 재계 리더로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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