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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종현 선대회장 뚝심... 통신·바이오 육성 밑거름 됐다” [되돌아 본 SK그룹 창립 68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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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YS정부때 인수 성사

이통사업 과감한 베팅으로 결실

바이오, 1993년부터 연구 개발

헤럴드경제

고(故) 최종현(왼쪽) 회장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최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SK 제공]

‘SK텔레콤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선도, SK바이오팜의 상장 잭팟,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생산.’

SK그룹의 4대 핵심 사업 중 디지털·바이오 사업이 최근 거둔 성과다. 8일 SK그룹 창립 68주년을 맞아 이같은 성과의 주춧돌이 된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뚝심 경영’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SK텔레콤은 그룹 디지털 사업의 모태가 되고 있다. 통신을 기반으로 미디어·보안·커머스·모빌리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데 이어 SK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투자, 미국 인텔 낸드 사업 인수 등 메모리 반도체 선두업체로 성장 중이다.

SK는 ‘특혜논란’과 달리 SK텔레콤을 품에 안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 선대회장은 두 번의 인수 포기라는 대승적 결단도 불사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2년 8월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절차가 진행된 것은 맞다. 그러나 선경(현 SK)은 포철, 코오롱, 쌍용 등을 제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결국 사업권을 반납했다. 사돈관계에 대한 특혜시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절차는 김영삼 정부 초반인 1993년 다시 시작됐다. 정부는 특혜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전경련에 선정 절차를 위임했다. 하지만 최 선대회장이 전경련을 이끌고 있던 터라 또다시 특혜시비가 일 것으로 판단, 고심 끝에 사업권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최 선대회장이 이동통신 사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 매각 입찰에 뛰어들었다. 당시 최고가를 써내면서 지분 23%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8만원에 이르던 주가가 네 배 이상 뛰었으나, 통신사업에 대한 비전을 갖고 수천억원의 베팅에 나선 것이다.

즉 SK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노태우 정부 때가 아닌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이동통신 사업을 품에 안게 됐다.

아울러 SK의 새 캐시카우로 떠오른 바이오 사업 또한 최 선대회장의 치밀한 준비와 도전정신이 바탕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에너지·화학 산업의 뒤를 이을 신성장동력으로 제약·바이오에 주목하고 1993년 제약(Pharmaceutical)의 영어단어 첫 음절을 딴 ‘P 프로젝트’를 만들며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제약사 대부분은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 복제약 시장에 주목했다. 그러나 최 선대회장은 한국에서 최초의 신약을 선보이겠다는 신념으로 연구개발에 중점을 뒀고 미국과 중국 등의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지금의 결실을 맺게 됐다는 평가다.

한편 최태원 회장, 최재원 SK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 가족과 조대식 SUPEX추구협의회 의장, 각 위원회 위원장, 주요 관계사 CEO 등 30여명은 이날 화상으로 메모리얼 데이를 개최, 최종건·최종현 형제 경영진의 창업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김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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