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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삼성은 다 계획이 있구나"…10년전 산 ASML 지분가치 9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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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에서 정중앙)이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공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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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10여년 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슈퍼을' 네덜란드 ASML에 투자한 3630억원이 작년말 기준으로 9배 수준인 3조원으로 불었다. 현재는 투자금액 대비 12배가 넘는 4조원대까지 높아졌다.

이는 삼성전자가 주주로서 쏠쏠한 수익을 창출했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다. 지분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EUV 도입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래도 장비 확보에 조금이나마 유리한 위치를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반도체 시장에선 EUV 장비 수급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전세계 EUV 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ASML이 유일한 데다 매년 생산대수도 한정적이다보니 1대에 2000억원에 달하는 장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특히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를 추격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시의적절한 EUV 장비 확대는 필수적인 요소다.

◆2012년 3630억원→ 2020년 3조3505억원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공정가치금융자산 중 ASML 보유주식 수는 629만7787주다.

장부금액(시장가치)은 3조3505억원으로, 전년(2조1547억원) 대비 1조원 이상 뛰었다. 취득원가(3630억원)와 비교하면 9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올 들어서도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인해 ASML의 주가는 더 뛰었다. 직전 거래일(16일) 기준 ASML의 주가는 645.69달러로 작년말 487.72달러에 비해 32%이상 올랐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작년말 지분 가치에 올 들어 주가 상승폭을 단순 계산해보면 현재 가치는 4조4357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ASML 지분 3%를 사들였다. 지금 와서 9배 이상의 투자수익을 냈지만 당시에는 단순 투자 목적보다는 장비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속사정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지분이 장비 확보를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라 할 순 없지만 어느정도 상관관계는 있다고 본다"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들이 과거에 ASML 지분 투자를 단행했을 당시 지분율에 따라 EUV 장비 공급 순서가 결정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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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말 기준 삼성전자 공정가치금융자산 중 상장주식. [사진출처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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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 인텔과 TSMC도 ASML 지분 15%, 5%를 각각 사들였다. ASML과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후 인텔은 보유 지분율을 현재 3%까지 대폭 낮췄고, TSMC는 2015년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삼성전자도 2016년 보유 지분을 절반(1.5%) 매각했으나 다른 두 회사보다 주식 매각에 더 소극적이다. 삼성전자와 ASML은 장비 거래를 통해 인연을 맺어왔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부터 ASML과 초미세 반도체 공정 기술 및 장비 개발을 위해 협력해 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양사 관계가 더 끈끈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ASML 네덜란드 본사를 직접 찾아 물량 확보를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에도 삼성전자를 방문한 피터 버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을 만나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으며, 2019년 2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턱 없이 부족한 EUV 장비 공급...올해는 40대 수준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ASML에 민감한 이유는 초미세공정에 필수인 EUV 장비 공급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SML은 전세계에서 EUV 노광 공정장비를 만드는 유일한 기업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100%를 자랑하는 '갑 위의 수퍼을'인 셈이다. 업계에선 EUV 장비 확보 경쟁은 '전쟁'과도 같다고 한다. 장비 1대당 1500억~2000억원으로 알려졌지만, 수요 급증으로 3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ASML에 따르면 연간 EUV 장비 출하대수는 2018년 18대, 2019년 26대, 2020년 31대다. 올해는 생산성을 개선해 연간 장비 판매대수를 40대 수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이 마저도 현재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엔 부족하다.

업계와 외신 따르면 ASML은 내년 생산량까지 모두 주문이 끝난 상황이다. 올해 출하될 40대 EUV 장비 중 70~80% 삼성전자와 TSMC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양사 EUV 노광장비 확보 대수는 TSMC가 약 40대, 삼성전자가 17~19대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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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 EUV 노광장비. [사진 = AS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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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확보가 늦어지면 미세 공정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1대의 EUV 장비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인텔, SK하이닉스도 본격적으로 EUV 장비를 들여오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4조7500억원을 들여 EUV 장비 들여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비 운반과 설치 등의 비용을 고려하면 최대 18대가 도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인텔은 200억 달러(약 23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EUV 확보 경쟁을 예고했다. 인텔은 기존에도 EUV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파운드리 사업 확대에 발 맞춰 EUV 장비 수급에 본격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수요가 넘쳐나다보니 ASML 실적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ASML은 매출 140억 유로(약 19조원), 순이익 36억 유로(약 5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8.6%, 38.5% 급증하며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에도 장비 주문이 늘며 호실적이 예상된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winon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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