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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쿠바 ‘카스트로 시대’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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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카스트로 공산당 총서기 공식 사임…‘혁명세대’ 퇴장

후계자 디아스카넬 대통령, 경제 위기 속 변화 압력 직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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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전으로 친미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쿠바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카스트로 형제의 시대가 62년 만에 막을 내렸다. 89세의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총서기(제1서기·오른쪽 사진)가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1959년 피델 카스트로(1926∼2016·왼쪽)부터 이어진 ‘혁명의 시대’가 저물고, 혁명을 겪지 않은 첫 민간지도자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쿠바가 ‘포스트 카스트로’ 정치체제로 전환하면서 개방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 총서기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개막한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 개회사에서 “임무를 다했다는 만족감과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임기를 끝낸다”면서 “살아 있는 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지키는 전투원으로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당 독재 체제인 쿠바에서 공산당 총서기직 이양은 정계 은퇴를 의미한다. 카스트로는 2016년 전당대회에서 5년 뒤에 열리는 차기 전당대회 때 사임한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그의 은퇴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19일까지 나흘간 진행되는 이번 전당대회에선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 부서기(90)도 물러날 예정이어서 ‘역사적인 세대’로 불리는 쿠바 혁명세대들이 모두 정치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60)이 총서기에 오르면 쿠바 공산당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쿠바 동부 스페인 이민자 가정에서 일곱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카스트로 총서기는 형 피델과 함께 1953년 몬카다 병영 자살공격을 감행하며 혁명가로 이름을 알렸다. 체 게바라(1928∼1967)를 피델에게 소개한 사람도 그였다. 쿠바 혁명 게릴라전을 지휘했고,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혁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국방장관, 국가평의회 부의장, 공산당 부서기 등을 맡았다. 2006년 형 피델의 건강이 악화하자 통치권자 역할을 했고, 2011년엔 총서기에 올랐다. 피델보다 더 강경한 공산주의자로 평가받지만 10년간 쿠바를 이끌며 실용주의 노선도 병행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과 국교 정상화도 이뤘다.

60여년 만에 정치 전면에서 카스트로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쿠바는 변화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노먼 매케이 연구원은 AFP통신에 “2019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새 헌법은 공산주의 1당체제를 확고히 하고 있어 정치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변화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밝혔다. 1993년 이후 경제지표가 최악을 기록한 게 변화가 요구되는 가장 큰 배경이다. 오바마 미국 정부와 회복한 외교 관계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뒤엎으며 쿠바에 대한 제재가 이뤄졌고,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광수익까지 줄면서 국내총생산(GDP)이 11%나 하락했다. 25년 이상 유지돼 온 이중 통화제가 지난 1월 폐지돼 단일 통화제가 시행되면서 물가상승률이 500%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백악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쿠바에 가한 제재 일부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7일 “미국은 쿠바 국민이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 대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현재 쿠바에 대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스트로 총서기도 연설에서 “혁명과 사회주의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정중한 대화를 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후계자인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반체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는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지 않은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반정부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경제살리기가 필수여서 개방에 대한 압력을 더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쿠바 반체제 운동가 루이스 마누엘 오테로 알칸타라는 로이터에 “카리스마와 대중적 지지가 별로 없는 대통령이 권력을 물려받는다”면서 “우리가 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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