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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외할머니의 사랑 남긴채… ‘집으로’ 할머니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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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김을분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

외손자 돌보는 언어장애 할머니역

본보 인터뷰 사진 영정으로 쓰여

동아일보

2002년 개봉한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 역을 맡은 김을분 할머니(왼쪽)와 일곱 살 손자를 연기한 배우 유승호. 충북 영동군 상촌면 지통마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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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머니. 저 이 감독이에요….”

16일 밤 영화 ‘집으로…’(2002년)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57·여)은 영화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김 할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약해져 수년 전부터 아들과 함께 살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이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풀리면 꼭 면회 갈게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17일 새벽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의 빈소에 마련된 영정사진으로 2002년 동아일보와 인터뷰 당시 촬영한 사진이 쓰였다. 김 할머니의 며느리는 “연세가 많으셔서 2년간 병치레를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18일 통화에서 이 감독은 “며칠 버티시면 다시 건강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감독은 “우리들의 할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추모했다.

‘집으로…’는 7세 서울 꼬마가 TV도 없는 산골의 외할머니 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김 할머니는 딸이 맡긴 외손자 상우를 돌보는 77세의 언어장애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손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호(28)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큰 감동을 선사했다. 430만 명이 관람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김 할머니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역대 최고령 신인 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이 감독은 매해 가을 김 할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며 교류했다. ‘집으로…’ 촬영 후 할머니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 감독이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배우나 스태프를 데리고 갈 때면 “(이 감독은) 남자 친구가 자주 바뀌네”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할머니는 영화를 촬영하실 때도, 그 후에도 항상 친절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4시 50분. 02-2152-1360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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