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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1이닝에 3도루, 야수 3명이 투수로… 만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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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황당 진기록’ 속출

지난 17일 국내 프로야구 경기에선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을 만한 황당한 장면이 여럿 나왔다. 어떤 경기는 수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록이 쏟아지는가 하면, 다른 경기에서는 외국인 감독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내 야구 팬은 물론이고 야구계 관계자들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당돌한 20세의 ‘한 이닝 3도루’

프로 2년 차 삼성 김지찬(20)은 17일 롯데와 원정 경기 1회에만 2안타 3도루를 올렸다. ‘한 이닝 3도루’는 1999년 신동주(삼성)와 타이기록인데, 안타 두 개를 곁들인 것은 KBO리그 최초다.

조선일보

17일 부산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 롯데의 경기에서 1회초 삼성 김지찬이 2루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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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이 롯데 선발 투수 앤더슨 프랑코와 포수 김준태의 약점을 과감히 파고들며 이 같은 진기록이 나왔다. 프랑코는 주자가 있을 때 투구 동작이 긴 편이고, 김준태는 도루 저지율이 낮다. 이날 1번 타자로 나선 김지찬은 내야 안타로 출루한 뒤 구자욱 타석 때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김지찬은 타자가 일순하며 1회 다시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를 친 뒤 2, 3루를 연달아 훔쳤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어린 선수인데 패기 있게 잘 뛰었다. 아주 당돌한 선수”라고 했다.

반면 롯데 선발 프랑코는 1회에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안타 6개, 볼넷 3개를 내주며 강판당했다. 수비 실책도 겹쳐 크게 흔들렸다. 그는 1회에 공 61개를 던졌는데, 이는 역대 한 이닝 최다 투구 수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1990년 최창호(태평양), 2006년 심수창(LG)의 59구였다. 최창호와 심수창은 1이닝을 채우고 내려왔지만 프랑코는 3분의 2이닝 만에 강판 당했다.

◇투수는 12실점, 야수는 무실점

메이저리그에선 역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점수 차가 벌어졌을 때, 그리고 무제한 연장에 돌입해 투수 고갈됐을 때 고육지책으로 야수를 마운드에 올린다. 국내엔 아직 낯선 장면인데, 올해 벌써 여러 차례 야수들이 방망이 대신 공을 쥐고 마운드에 섰다.

올 시즌 한화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지난 10일 내야수 강경학과 외야수 정진호를 마운드에 내세웠다. 8회까지 10점 차 이상으로 뒤지자 투수를 아껴 다음 경기에 대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이를 두고 “나 같으면 입장료 내고 이런 경기는 안 본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야구 팬들은 대체로 수베로 감독을 옹호했다. 타팀 사령탑들도 수베로 감독의 운용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며 야수 등판을 옹호했던 허문회 롯데 감독은 17일 삼성전에 한 술 더 떠서 신기록을 세웠다. 허 감독은 이날 0-12로 뒤진 7회 1사 1·2루에 외야수 추재현을 다섯 번째 투수로 내보냈고, 이어서 내야수 배성근과 오윤석을 마운드에 올렸다. 이들은 2와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국내 리그에서 야수 3명이 한 경기에 투수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 빅리그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허 감독은 “던질 투수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 팀에 미안하다”고 했다.

◇알면 알수록 묘한 ‘미국식 불문율’

수베로 감독은 17일 NC전 8회에 10점 차로 뒤지자 정진호를 또 마운드에 올렸다. 정진호를 상대한 나성범은 3볼에서 스윙했고 파울이 나왔다. 그러자 수베로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손가락 세 개를 펴보이며 격분했다. 점수 차가 클 때 3볼에서 스윙하지 않는 불문율을 어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8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3볼에 배트를 돌려 만루 홈런을 때렸다가 빈볼을 맞을 뻔했다.

이에 대해선 ‘수베로 감독이 한국 야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의견이 더 우세한 분위기다. 이강철 KT 감독은 “우리나라에선 그런 상황이면 오히려 빨리 쳐서 끝내주는 것이 상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베로 감독은 18일 “문화적 차이다. 당시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KBO 2년 차인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이에 대해 “미국과 한국의 야구 문화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상대 감독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수베로 감독에게 조언했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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