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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자수첩] 옵티머스 배상 미루는 NH증권에 직원들도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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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프라이빗뱅커(PB) 처벌법이 필요해요. 이 사람들 정말 악질이에요.”

지난주 만났던 한 사모펀드 피해자는 펀드 손실이 명확한 상황인데도 PB의 대응이 미적지근하다면서 분노했다. 이 피해자는 자신에게 부실 펀드를 안전하다는 취지로 판매한 PB의 잘못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PB도 억울하다. 피해자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실 대부분 PB는 본사 지시를 따르는 조직원에 불과하다. PB는 본사가 전달한 안내문에 따라 펀드를 판매한다. 본사 상품기획부서와 리스크관리부서는 펀드 안정성을 검증하고 판매를 독려한다. PB의 판매 실적은 성과에 반영된다. 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PB에게 있지만, 근본적 책임은 상품을 유치·승인하고 영업을 독려한 본사에 있다.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 펀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옵티머스자산운용 고문의 부탁에 따라 김재현 당시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를 상품 기획 담당 관리자급 직원에게 소개했다. 담당 직원은 옵티머스 펀드의 주요 투자처로 제시됐던 공공기관 매출채권의 존재 여부를 검증하지 못하고 상품을 승인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금융업계에서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어떻게 가능하냐. 가장 기초적인 검증 의무도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옵티머스 펀드는 영업점에서 공격적으로 판매됐다. 한 NH투자증권 직원은 당시 영업점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일부 PB들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꺼림칙하다면서 펀드를 자체적으로 판매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할 수는 없었어요. 너도나도 판매 실적을 내야만 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괜히 반기를 들면 영업에 방해되는 이단자로 분류됐지요."

하지만 문제가 터지자 현장에서 애가 달았던 사람은 책임 소재가 컸던 담당 직원보다도 PB와 투자자였다. 투자자는 담당 직원을 만날 수가 없어 PB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왜 배상이 늦어지느냐”, “당신이 가서 본사를 설득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PB는 권한이 없으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옵티머스 펀드 사례는 아니지만 이전에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는 도끼를 들고 찾아온 피해자도 있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NH투자증권에 ‘판매에 의한 계약취소’를 권고하면서 상황을 정리하려 했으나, NH투자증권의 윗선에선 ‘이렇게는 억울해서 결론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도 그랬을 것이 정영채 사장은 일상적인 업무 차원에서 담당 직원에게 운용사를 소개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수탁은행과 사무관리회사도 함께 배상하는 차원에서 검찰 조사를 기다려보자는 것이 NH투자증권이 은연중 내비친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작 현장 직원들은 계약취소로 사안을 빨리 마무리했으면 하는 눈치다. 더는 ‘시간 끌기’로 투자자의 신뢰를 잃을 수가 없다는 취지다. 한 NH투자증권 직원은 "우선 분쟁 조정에 응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한다"면서 "고객을 볼모로 분쟁 조정을 미루고 투자자와 소송전을 벌이면 영업하기 더욱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의견을 전했다.

오죽하면 NH투자증권 노조도 이례적으로 계약취소를 받아들이라는 시위에 나섰다. 금감원이 권고한 3000억원대의 투자금을 반환하면 직원의 성과급이 깎이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노조에선 "다자배상이든, 펀드 판매(취소 결정이)든 정영채 사장은 시간 끌기로 본인의 안위를 챙기지 말고 고객과 직원과 회사를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성명문에 썼다.

NH투자증권은 금감원의 권고안이 나간 지 20일이 되는 29일까지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를 보내야 한다. 투자자가 아니라 직원을 위해서라도 윗선 책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NH투자증권의 PB 수만 700명으로 전체 인원의 20%가 넘는다. NH투자증권이 결정을 미룬다면 다시금 현장 직원만 고생하는 구조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 기자(relati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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