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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메르켈의 후계자’ 메르켈만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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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잇는 라셰트에 “메르켈보다 인기” 죄더 도전

한겨레

독일 기독교사회당(CSU)의 마르쿠스 죄더 대표.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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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기독민주당(기민당·CDU) 대표 아르민 라셰트와 기독사회당(기사당·CSU) 마르쿠스 죄더 대표는 약속했던 단일화 시한을 넘겼다. 이날 두 후보는 늦은 시간까지 베를린에서 협상을 이어갔으나 자정을 넘기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 독일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집권여당이 총리 후보를 싸고 진통을 겪으면서 누가 되든 기민-기사 연합 분열과 리더십 부재로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독일 정가엔 숨 가빴던 한 주였다. 지난 11일 두 후보가 각기 출마 선언을 하면서 당은 둘로 나뉘었다. 12일 기민당 최고위원회가 라셰트 후보 지지를 밝히자, 13일엔 죄더가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은 원내회의를 찾았다. 이날 라셰트도 갑자기 일정을 변경해 두 후보가 의원들 앞에서 오랜 시간 설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라셰트 후보는 “(우리 당엔) 원맨쇼는 필요 없다”며 대중적 인기를 배경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죄더를 비판했다.

온화한 이미지의 라셰트가 강공에 나선 것은 그만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바이에른주 주지사인 죄더는 코로나 초반 빠르게 통행금지 등 선제적인 방역 조치에 나선 덕분에 ‘위기 관리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바이에른뿐 아니라 독일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또 연설문 없이 진솔하게 연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서류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할 말을 고르는 라셰트의 연설 스타일과 비교되곤 한다. 죄더가 ‘카리스마 주지사’ 이미지를 챙길 때, 라셰트는 ‘기운 없는’이라는 뜻의 독일어 ‘라슈’(lasch)와 비슷한 이름처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조롱받았다. 게다가 기민당 대표인 라셰트는 여당 의원들이 마스크 납품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긴 ‘마스크 스캔들’의 여파로 기민당과 함께 개인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15일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 ‘독일 트렌드 조사’에선 독일 국민의 44%, 기민-기사당 연합 지지자 72%가 죄더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라셰트 지지자는 독일 국민 15%, 연합 지지자 17%에 그쳤다. 13일 독일 일간지 <빌트>의 정치인 선호도 조사에선 죄더가 1위를 차지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보다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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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독민주당(기민당·CDU)의 아르민 라셰트 대표.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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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동안 미디어를 활용해 정치인으로서 주가를 높인 죄더의 행보를 두고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2018년 죄더와 기사당은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자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이에 견줘 2005년 최초로 다문화통합장관을 맡았던 라셰트는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구현해온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라셰트는 통합형 지도자다. 기민당 대표 선거 경쟁자였던 프리드리히 메르츠조차 단일화에서 라셰트를 지지하고 나섰다. 주간지 <슈피겔>은 라셰트가 그동안 불리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정치적 입지를 높여온 점을 들어 그를 강력한 주먹은 없지만 많은 잽을 찔러넣어 이기고 말았던 영화 속 권투선수 ‘록키’에 비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일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이며 여당 기민당이 민주적 절차로 선출한 대표라는 점이 라셰트가 유리한 이유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라셰트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18일엔 기민당 청소년위원회가 죄더 지지를 선언했다. 이대로라면 죄더가 총리 후보로 선출되는, 소수파의 역전극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누가 되더라도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여당의 고민이 있다. 죄더 지지자들은 죄더가 극우로 이탈하는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는 여당과 지지율 격차를 바싹 좁힌 녹색당이 다음 정권 창출의 열쇠를 쥐고 있다. <슈피겔> 4월 조사에 따르면 기민-기사당 28%, 녹색당 23%, 사회민주당이 15%로 녹색당이 연정의 중심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두 후보가 단일화를 싸고 갈등을 벌이는 사이 녹색당은 19일 총리 후보를 발표하며 선거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은 “여당이 인물론에 치우쳐 대립하는 와중에 녹색당은 정책적으로 확장되는 상황”이라며 “여당 두 후보가 집권 연장이란 목표에만 매몰되지 않고 진보적인 정책을 과감히 수용해 진영을 넘어선 지지를 이끌어낸 메르켈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을 진정으로 계승할 수 있을지 독일 사회는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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