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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단독] 정세균 "적폐청산 필요하지만 조용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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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퇴임한 지 사흘 만에 에세이집을 내고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짧은 글귀의 단행본을 통해 그동안 정부부처 수장으로서 말하지 못했던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도 '자기 색깔'을 드러냈다. 정 전 총리는 총리직 사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18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경기도 일산 사저를 찾았다. 정 전 총리를 정치로 입문하게 한 DJ를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리는 300쪽 분량의 저서 '수상록: 정세균 에세이'를 20일 출간한다. 매일경제가 미리 입수한 이 책은 여느 정치인의 자서전이나 에세이집과 달리 경어체·구술체로 작성됐다. 하나의 글감마다 에세이 분량도 1~2쪽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의 집필자는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칭을 가진 정 전 총리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대화를 이어가는 듯한 방식으로 책이 구성됐는데, 최근 부동층·스윙보터 성향이 강해진 M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총리로 임명되는 바람에 출간을 미루다 재임 당시 방역 지휘 경험을 추가해 퇴임 직후 출간됐다.

정 전 총리는 책에서 코로나 방역사령관으로서 국무총리 업무와 함께 지난 30년 정치인생의 전반에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했다. 정 전 총리는 서두에서 우리 사회를 '정치과잉 초갈등사회'라고 정의하고 "리더가 결단력을 갖고 신뢰 회복과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동안 총리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미묘한 현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전 총리는 최근 여권 개편의 화두로 떠오른 검찰개혁·적폐청산에 대해 "아이들을 나무랄 때도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면 반발심을 일으킨다"며 "적폐청산이 너무 시끄럽고 요란해서는 오히려 적폐청산에 이롭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적폐청산이 필요하지만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서는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더 낫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른바 '추·윤 갈등' 구도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지원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때리기에 전력한 당시 여권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셈이다.

당내 경선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선명히 했다. 정 전 총리는 "한두 번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 실험은 있었으나 제도화한 나라는 없다"며 "지금의 (선별방식) 복지제도를 잘 정비하면서도 고통이 있고 국민의 눈물이 있는 곳에 국가의 재정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솔직히 밝힌 정 전 총리는 "본래 정치인들은 다 경쟁관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나는 경쟁관계보다는 줄곧 협력관계였다"고 적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참여정부 민정수석비서관 시절을 언급하며 "경청은 잘하시지만 짠 분"이라며 "희망을 걸고 전화했지만 실망을 체험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고 소회했다. 정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본인은 형식적인 상주, 문 대통령은 실질적인 상주였다며 "위기에 강한 면모 덕분에 국민이 (문 대통령을) 신뢰했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투기 억제 위주의 규제 정책에서 공급을 대폭 늘리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총리로서 대통령께 건의했다"며 공공이 공급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문재인정부 초기 규제 위주의 실정을 뒤늦게 바로잡으려 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정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무쳐 일산 사저를 찾았다"며 "오늘 찾아뵌 이유는 다시 김대중으로 돌아가기 위한 다짐"이라고 밝혔다.

[한예경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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