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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10분 만에 1000만원 날려"…코인판, 도박판이 따로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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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기로 전락한 가상화폐 ◆

매일경제

규제 사각지대에서 가상화폐 거래소가 난립하고 `묻지 마 매수` 열풍까지 불면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19일 가상화폐 거래소 직원이 강남에 위치한 거래소 시세판을 지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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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매 기록을 공유합니다. 단 10분 만에 1000만원을 잃었습니다." 인공지능(AI) 매매 기법을 활용해 비트코인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한 투자자가 올린 글이다. 채팅방 관리자는 해당 글이 올라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글을 삭제했다. 곧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었다는 '수익 인증' 글이 다시 채팅방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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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각종 파생거래 행위가 급증하면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내 금융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아 투자자 보호가 되지 않는 만큼 큰 손해를 볼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투자자 김 모씨는 프로그램 매매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지난 9일 2000만원을 한 거래소 프로그램에 입금했지만 1000만원 이상 손실을 봤다. 기자가 카카오톡을 통해 투자 상담을 진행하자 이 거래소 관계자는 "AI를 기반으로 제작된 자동매매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창출한다"고 투자 기법을 소개했다. 자신들의 AI 프로그램이 차트를 분석해 자동으로 매수와 매도 계약을 체결해준다는 것이다. 투자자는 입금액과 목표 수익, 투자 기간 등을 설정하면 자동으로 프로그램이 매매를 결정한다. 이 관계자는 "안정성이 높고 손실 확률이 낮아 고객들이 손실 복구용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매매 기법은 증권사가 주식시장에서 주식 매매를 위해서도 활용하는 방식이다. 주식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기관투자가가 주로 이용하는 기법이다. 전문 투자자가 주식 대량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매매 기법이 일반 비트코인 투자자에게 '안정적 수단'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자산이 현재는 금융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아 프로그램과 관련한 검증이나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기 어렵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여러 매매 기법이 파생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사기 등 범죄 행위가 동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과 관련한 또 다른 파생거래로 '마진거래'가 있다. 마진거래는 투자자가 거래소에 증거금을 예치하고 비트코인 가격의 시세를 예측해 돈을 거는 투자 방식을 의미한다. 투자자는 가상자산에 공매수(가격이 오른다는 예측)나 공매도(가격이 내려간다는 예측)를 할 수 있는데, 예측이 맞는다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예상이 빗나가면 거액의 돈을 잃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트코인 마진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해외 마진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다.

특정 종목(가상자산)을 '리딩'(종목을 추천하고 특정 가격대에 매수·매도를 유도하는 행위)하거나 '시세 조종'하는 행위도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처벌하기 어렵다.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아 이를 처벌할 법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리딩방에 참여해 1000만원을 투자했다가 200만원의 손실을 본 손 모씨(31)는 "'세력'은 미리 특정 코인을 저가에 매입하고 투자자를 모아 가격을 급등시킨 뒤 시세차익을 보고 빠진다"며 "세력들에게 얼마나 근접해 있느냐가 돈을 벌 수 있는지 가늠자"라고 말했다.

한편 규제가 허술한 틈을 타 가격 급상승을 노리는 투자자와 각종 검은돈이 최근 가상자산 시장으로 몰리며 가상자산 시가총액이 급상승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을 제외한 코인들을 일컫는 '알트코인' 시총은 올 들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자들이 알트코인으로 몰려든 결과다. 비트코인이 지난해 금의 대체재로 시장에서 각광받으며 가격이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언제든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해 기존 화폐를 위협하면 각국 정부가 규제를 꺼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격이 계속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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