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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서복’ 감독 “마블식 SF 원했나요? 인간의 두려움이 나의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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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감독 인터뷰

한겨레

<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영화 <서복>으로 돌아온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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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이용주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됐을 때, 첫사랑의 떨림과 열병을 깔밋한 연출로 담아낸 이 역대급 멜로영화의 감독이 차기작으로 복제인간 이야기를 선택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5일 개봉한 이 감독의 복귀작 <서복>은, ‘멜로에서 에스에프(SF·공상과학)로의 변화’라는 단순한 예단을 뛰어넘으며 감성 연출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재확인시켜줬다. 복제인간을 내세운 에스에프란 소재는 그저 장치일 뿐, 영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드라마였던 것이다.

<건축학개론>을 자신의 ‘첫사랑’이자 대표작으로 꼽던 이 감독은, 이제 그 자리에 <서복>을 앉히려 한다. 물론 사랑은 배반되기 마련이다. 지난 16일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서복>을 에스에프영화로 오해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관객들은 할리우드 마블식 에스에프를 기대한 게 아닐까 싶어요. 영화를 알릴 때도 에스에프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는데,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그렇게 읽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역시 단어의 힘이 센 거죠. 감독 입장에서 장르는 이야기의 외피일 뿐인데, 관객들에겐 영화를 읽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다음 작품을 만들 때, 교훈으로 삼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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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을 연출하는 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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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일부 관객의 부정적 평가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영화의 의미와 취지를 설명했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설정한 건 삶과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도구로 그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이런 점이 대중의 호불호가 갈리는 결과를 낳았는데, 사실 이는 그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기도 하다. “2009년 데뷔작 <불신지옥> 때도 관객 평점이 10점과 1점으로 갈렸어요. 비판은 주로 ‘공포영화에 왜 귀신이 안 나오느냐’는 거였죠.(웃음)”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해서 이 영화가 혼종이나 컬트적인 건 아니다. <서복>은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문법을 익숙하게 따르는, 잘 만든 장르영화다. “장르는 죄가 없죠. 얼마나 관객을 설득하는지가 관건이죠. <서복>은 초월자 같은 존재인 서복(박보검)이 기헌(공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면서 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이 점이 관객들에게 (과거 자신의 작품과는) 다르게 다가갈 거라고 봤습니다.”

그는 “이야기의 목적은 언제나 작가인 감독 자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끝까지 가려면 작가로서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흥행 잘될 것’이라며 들어온 제안도 감독이 끌리지 않으면 할 수 없지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노력으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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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감독. 씨제이이엔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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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공유를 콕 집어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유씨가 구토 장면을 목에 담이 걸리도록 찍었는데, 막상 영화에선 편집이 많이 됐어요. 관계자 시사에서 다들 그 장면을 보고 ‘시한부 환자가 아니라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오바이트하는 거 같다’고 해 결국 들어냈죠.(웃음)”

그는 “이전까지 저의 대표작이 <건축학개론>이었다면, 지금은 <서복>”이라고 힘줘 말했다. 기억나는 한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영화 후반부 기헌과 서복이 서로를 신뢰하게 된 바닷가 장면을 들었다. “서복이 돌무덤 등을 이용해 기헌을 위로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네요. 시지(CG·컴퓨터그래픽)에 공을 많이 들였던데다 제가 제작진을 설득해 관철시킨 장면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감독은 두려움에 대한 서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서복>이 자신의 데뷔작인 <불신지옥>의 확장판이라고 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무엇을 욕망하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욕망이 없으면 두렵지도 않거든요. 또한 두려움은 나이 든 사람들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는 겁이 없잖아요.(웃음)”

“행복은 실재하지 않는 파랑새 같은 것”이라며 “행복보다 덜 불행한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그는 “차기작은 파트너만 정해진 상태인데, 코미디를 하더라도 내 얘기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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