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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백신확보 실패 누가 잘못했나 [김세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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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일 서울 강서구 부민병원에서 항공업계 승무원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항공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날부터 시작된다.2021.4.19.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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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정부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계획대로 하면 금년 11월까지 집단면역이 이뤄진다고 국민에게 설명했다.

지금도 '11월은 유효'라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11월 집단면역은 물 건너 갔다고 말한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집단면역 시기를 내년 여름으로 늦춰 잡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집단면역이 늦어지면 경제 정상화는 지연되고 청년 실업, 자영업자 고통은 커질 것이다.

내년 3월 대선 때는 "도대체 어떤 자가 잘못해 백신이 이 모양이 됐냐"는 분노가 표를 가를지 모르겠다.

이스라엘, 영국은 이미 코로나에서 해방됐다는 거리 풍경의 사진이 뜨고,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직후 앨버트 부를라 화이자 CEO와 통화해 1억회분을 확보했다는 소식에 한국인은 더욱 씁쓸하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나.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화이자, 모더나의 A급 백신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말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CEO와 통화해 금년 5월에 공급받기로 했는데 기약이 없다.

정부는 국민에게 7900만명분을 확보해놨다고 안심하라고 말했는데 화이자 1300만명분, 모더나 2000만명분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가운데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몫은 904만명(1808회분)인데 59%가 아스트라제네카(AZ)이고, 나머지 41%가 화이자이다. 화이자는 겨우 360만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모더나는 대통령의 작년 말 통화로 2000만명분을 4000만명분으로 늘려 5월부터 공급받기로 했는데 당시 재미 어떤 교수가 다리를 놨다고 한다.

이게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은 혈전(blood clot·피떡) 발생으로 까딱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어 불신감이 높아 네덜란드는 아예 접종을 금지시켰다.

정부는 노바백스 2000만명분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아직 미국, 유럽연합(EU)에서 OK 사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국산 백신, 러시아산(스푸트니크 등)을 들여오자니 국민의 부아를 키울까봐 말도 못 꺼낸다.

●화이자 모더나 구애, 美는 "3차 접종"

전 세계가 화이자, 모더나에 덤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둘 다 미국이 생산한다.

미국은 접종률이 20%로 꽤 높은데도 이 두 가지 백신 6억회분을 확보해 놨다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랑했다.

얀센 같은 것은 안 써도 된다고 튕기면서.

EU도 화이자 5000만명분을 당초 3분기에서 2분기로 앞당기기로 하고 2023년까지 3년치 18억회분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화이자 백신 추가 확보를 위해 장관이 통화하려 했으나 화이자 측은 "장관은 안 되고 총리가 직접 나오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화이자, 모더나의 CEO는 웬만한 국가의 정상도 우습게 보는 세상이 돼버렸다. 기술이 곧 왕인 세상이다.

두 백신의 생산능력은 화이자 30억회분, 모더나 10억회분으로 두 회사를 합쳐 총 40억회(20억명)분밖에 안 된다.

집단면역이 완료된 이스라엘의 백신 효능 기간은 6개월로 돼 있다.

미국이 '부스터 샷(Booster shot)'에 나서겠다고 공표한 것도 같은 이치다.

시간에 지나면 백신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에 두 번 맞은 다음 6개월 후에 무조건 또 한 번 접종하여 백신 효과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EU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한국처럼 첫 번째 계약을 실패하고 미국과 관계조차 미운 털이 박혀 있다면 앞으로도 화이자, 모더나 등의 확보가 험난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전 세계 130개 국가는 아직 접종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큰 재난이 닥치니 국가도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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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코로나19 백신 /사진=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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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 회담서 1억회분 확보하나

화이자가 일본에 1억회(5000만명)분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에서 화이자, 모더나를 합쳐 1억회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뭉개고 있는 모더나에서 확답도 받아야 한다.

미국은 현재까지 화이자, 모더나 생산량의 98.3%를 미국 내에서 소비하고 1.7%만 해외로 돌렸다.

미국의 화이자와 모더나가 mRNA 백신에 성공한 것은 대담하게도 기술을 사는 데 5억달러를 베팅한 대가다.

터키 이민 출신 부부가 개발하고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거둬들인 mRNA 백신의 생산을 화이자, 모더나가 떠맡은 것이다.(이종구 서울대 교수)

문 대통령은 바이든을 졸라 미국이 확보해 놓은 6억회분에서 분양받으면 좋겠으나 미국으로서는 누군 주고 누군 안 주기 어려울 터다.

미국은 NAFTA 회원국이자 이웃 나라인 멕시코가 물량을 달라 해도 "못 준다"고 딱 잡아떼서 멕시코는 눈물을 머금고 중국산을 수입했다.

설상가상 문재인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체적으로 미운 털이 박힌 형국이다.

미국 측이 요청한 쿼드(Quad) 참여 요청에 불응하고, 한미군사 훈련을 축소하고, 사드기지 공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미국을 섭섭하게 해왔다.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으로 민주주의를 해쳤다는 미국 의회의 청문회가 열린 것도 악재다.

이런 마당에 백신 SOS를 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한국의 차기 정권 이후를 감안해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게 가느다란 희망이다. 모든 게 5월 하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결판날 것이다.

●작년 6월 대통령은 안 보였다

왜 화이자, 모더나 확보에 실패했는지는 정부만 알고 있는 기밀인데 밝혀지면 대선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니 쉬쉬 한다.

하지만 정부 회의에 참석했던 인사들의 말을 빌리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다.

화이자, 모더나 같은 국제적 제약사는 백신 개발에서 2상까지 성공하면 3상 임상실험에 나서는 데 3만~4만명을 대상으로 하려면 큰돈이 들어간다.

백인 흑인 아시아 중동인 등 다인종을 시험하는 게 원칙이다.

이때 경제력 있고 테스트베드가 되는 국가에 오퍼(offer)를 낸다는 게 질병본부장 출신 정기석 교수의 설명이다.

성공 시 우선 물량 배분을 보장하면서 베팅하라는 것이다. 성공 못하면 돈은 날아간다.

화이자, 모더나가 작년 7월 3상에 들어갔으므로 5~6월께 한국에 선구매 의향을 타진했을 것으로 본다.

화이자와 모더나 두 가지 백신만 충분히 들여온 싱가포르는 작년 6월 계약했다고 스트레이츠타임스는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의사, 과학자 등 1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이 백신 도입을 다뤘는데 한국은 복지부 등 주로 공무원들이 담당했을 것이다.

당시 회의를 했다는 관계자의 말을 빌면 "그 무렵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 속도가 가장 앞섰고 화이자, 모더나의 mRNA 방식은 최초이고 불안정한 측면을 봤다. 값도 비싸게 불렀다.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자고 회의에서 결론 냈다"고 설명했다.

1회 접종 비용도 모더나(영하 50도 보관)는 40달러, 화이자(영하 70도 보관)는 20달러, 아스트라제네카는 4달러 수준으로 제안됐다.

이 결과는 청와대를 통해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다.

때마침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하는 아스트라제네카는 국내 SK바이오로직스에서 생산 계약을 체결해 값도 싸고 국내서 생산하니 편리하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함이 작용했다.

만약 싱가포르, 이스라엘처럼 국제 정보를 파악하여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 무렵 화이자나 모더나 CEO에게 전화를 걸었더라면 지금쯤 한국엔 이들 백신이 넘쳐나고 국민 20~30% 접종이라는 진도를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전문가 공무원 대책반은 최초로 나온 mRNA 방식인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그렇게 대히트하고 한국이 주력 베팅한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이 혈전으로 애를 먹일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비전문가 실무진은 왜 미국이 mRNA에 큰돈(5억달러)를 베팅하는지 식별할 능력조차 없는 까막눈들이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정보기관 모사드를 동원해 선진국 동향을 탐지하며 "미국, EU보다 가격을 50% 더 쳐줄 테니 우리에게 물량만 달라. 우리 국민을 3상 임상실험으로 써도 좋다"는 대담한 전략으로 성공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했다. 우리는 대통령도 정보기관도 안 보였다.

한 관계자는 "솔직히 당시 K방역에 우쭐해 확진자도 많지 않은데 백신 도입이 뭐가 중요하냐"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실토했다.

작년 9월까지 청와대 정책실주관 백신회의를 하면 '백신주권'을 강조하고 제넥신 등 국산 개발 성공의 기대치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화이자와 모더나는 미국, EU, 이스라엘, 싱가포르, 중동 카타르 등이 물량을 완전히 가져가고 말았다?

설상가상 그 무렵 또 하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사고(?)가 터졌다.

어떤 인물이 백신 확보 말고도 "국내 업체가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19를 잡을 수 있다. 올해 봄에 마스크를 벗게 해주겠다"고 청와대에 장담하는 바람에 꼴딱 넘어갔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다.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실 여부를 국정조사나 청문회로 밝혀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화이자 개발 성공을 알릴 무렵 제약업체 일라이 릴리와 리제네론이 치료제를 개발해 투여했으나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코로나는 백신으로 끝장내야지 치료제로 증상 속도를 완화하는 시도는 쓸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전문가 무시 풍토가 禍 불러

백신 확보 과정을 놓고 보면 한국은 오판에 오판을 거듭했다.

화이자, 모더나가 개발한 mRNA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아스트라제네카와 효능이 아닌 가격과 관리(보존 온도차) 비용을 따지기 급급했다.

이종구 서울대 교수는 2020년 2월, 6월 두 차례 청와대 회의에 참석해 "백신을 빨리 확보해아 한다"고 문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이 건의는 무시됐다.

그로부터 6개월여 후, 문 대통령이 아랫사람에게 "진작부터 백신 확보에 힘쓰라고 했지 않냐"고 역정을 낸 게 12월이었다.

반면 미국의 트럼프, 이스라엘 네타냐후, 싱가포르 리셴룽은 직접 최일선에서 회의를 하고 확보 내용을 진두지휘했다.

한국의 정은경 질병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겐 2009년 신종 플루 당시 백신을 과다 도입해서 700억원가량을 날렸을 때 질병청 관계자들이 문책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따라서 100년 만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서 청와대, 국회 등에서 백신 확보에 대한 면책 조항을 미리 마련해 복지부 등 공직자들이 복지부동하지 않게끔 했어야 한다. 물론 최고의 민간 전문가들, 교수들을 총동원하여 '대책회의'를 하고 청와대에 코로나 워(war)벙커를 설치해 대통령이 직접 챙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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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소재 백악관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일본 총리관저 트위터 캡처,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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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백신 3년 계획 세워라

미국은 부스터 샷을 통해 3번째 접종 계획을 지시했고, EU를 비롯해 2023년까지 확보 계획을 화이자, 모더나와 협의 중이다.

한국의 접종률은 1차 접종 기준 2%대로 요원하다. 일본은 화이자만 1억4400만회분을 확보해놓고, 그리고 이번 방미외교에서 1억회분을 또 얻어냈다.

우리는 지난 주말에야 외교부가 대사들에게 "백신 확보에 박차를 가하라"고 영상회의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심을 넘어 부끄러울 지경이다.

외교 창구는 활용하더라도 대통령, 총리, 주요 장관이 직접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내년 이후 생산능력은 금년과 비슷한 40억회분이라 한다. 대신 독일 프랑스도 코백스 사노피 등이 성공작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산 백신 개발은 제넥신이 6~7월 중 3상 임상승인을 신청하고 3만명 이상 글로벌 임상을 한 후 연말 백신 개발 성공이 목표다.

백신 개발에는 수천억 원이 소요되며 모더나, 화이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10조원가량 지원을 받았다. 제넥신에 대한 정부 지원은 93억원에 불과하여 성공하면 3만도스를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하에 인도네시아와 합작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진원생명과학,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 등 4개사는 아직 1상 중이다.

이들 기업이 성공한다면 한국도 백신 주권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어서 기대된다.

지구상에 100년 만에 퍼진 팬데믹,코로나19는 기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 미·중은 기술패권전쟁 중이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정부는 유체이탈 화법식 쇼(show) 행정만 해왔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 확보 실패 과정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제대로 된 국정조사를 하고 문 대통령이 사과한 후 책임지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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