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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노정객은 사라지지 않았다…야권에 짙어지는 ‘김종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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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장나래의 국회TMI

한겨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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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7재보선 직후 홀연히 당을 떠났지만,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여전히 정치권에 큰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비토를 이어가는 가운데 20일 보도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히는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겨냥해 “안철수를 서울시장 후보로 만들려던 사람이다. 뒤로는 안철수와 작당했다”고 비판했는데요. 주 대행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경선 과정에서 특정인을 돕거나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즉각 반박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의 행보도 연일 관심사입니다. 그는 어딜 가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연락했냐”, “만날 계획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주로 받곤 하는데요. 그는 전날 <티브이(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다”고 했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정치를 그만하려고 한다”면서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역할을 할 필요가 느껴지면 국민의힘을 도울지, 윤 전 총장을 도울지 그때 가서 결심하겠다”며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비공개 회동으로 제3지대 창당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킹이 되진 않겠지만 막후 조력자 역할은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이 강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김 전 위원장이 떠난지도 얼마 안 된 당에 연일 독설을 내뱉으며 공세에 나선 것은 차기 대선에서 다시 한번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첫 정치 무대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제시하면서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이나 ‘흙탕물’에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전날 <티브이조선>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거취와 관련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언급하며 “윤 전 총장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갖고 출마하면 그 자체가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하는 것 아닌가”라며 “국민의힘이 자체적으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으면 국민의힘을 따라 가는 후보가 생길 수도 있고, 외부에 큰 대통령 후보가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갖고 대통령에 출마하면 거기에 국민의힘이 같이 합세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까지 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이 아닌 독자 정당을 구축하고 이를 본인이 지원하는 그림을 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죠.

하지만 그의 연이은 독설에 당내 비토도 함께 커지는 모습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뱀의 혀와 같은 독을 품고 있는 간교한 훈수이자, 저렴한 거간이다.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는 말은 단언컨대, 이간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권영세 의원은 지난 14일 당 중진연석회의에서 “마시던 물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은 훌륭한 분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윤석열 구애 작전’을 벌이는 국민의힘에 희망이 없다면서도 이런저런 훈수를 놓는 김 전 위원장을 향한 중진들의 비토 정서는 날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원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선들은 김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30여명의 초선 의원들은 지난 14일 모임을 가진 뒤 “우리 당을 이끌어주신 김 전 위원장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중진 의원들이 연석회의에서 김 전 위원장에 대한 비토를 쏟아낸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에 “김 전 위원장이 발언이 세서 그렇지 틀린 말이 하나라도 있냐”며 “모두가 안 대표가 된다고 했을 때 오세훈 후보를 당선시킨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의 독설을 ‘대선 승리 전략’이자, ‘입에 쓴 약’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입니다.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 진공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김종인 그림자’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중진들의 당권 투쟁이 치열해지고 리더십 공백이 느껴지는 만큼 역설적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승리의 경험을 안겨준 김 전 위원장을 향한 향수가 짙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이 다시 위기에 빠질 경우 결국 그를 ‘모셔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초선들도 적지 않습니다. ‘휴식 중’인 김 전 위원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파괴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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