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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속자생존시대...'속도에 미친 쿠팡' 10년 만에 10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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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졸속(兵聞拙速).

‘전쟁은 졸렬해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뜻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비용과 인명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실패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손자가 강조한 ‘속전속결’을 실천해 성공한 사례는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이다. 로마와 주요 도시를 고속도로처럼 연결한 ‘가도(街道)’, 하루 최대 200㎞를 주파한 기마병의 ‘압도적 기동력’이 제국 건립의 원동력이 됐다.

인류 역사는 속도 혁신의 역사다. 바퀴, 증기기관의 발명은 운송·이동 속도를 높였고, 종이, 인쇄술, 반도체는 지식과 정보 전파 속도를 향상시켰다. 로켓배송을 앞세워 불과 10년 만에 100조 기업을 일군 쿠팡은 속도전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사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구촌은 이제 더 이상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구분되지 않고 빠른 자와 느린 자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리고 빠른 자가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무조건 빠르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한번 ‘초고속’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더 이상 과거의 속도에 만족하지 못한다. 같은 값이면, 아니 조금 더 비싸도 보다 빠른 것을 찾는다. 빠른 자만이 살아남는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매경이코노미

‘속도에 미친 쿠팡’ 10년 만에 100조

고품질·저가보다 ‘초고속’이 시장 좌우


“쿠팡은 한마디로 속도에 미친 회사다. 어딜 가나 무조건 빨리빨리만 외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노동자의 전언이다. 혹독한 노동 환경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쿠팡의 빠른 배송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쿠팡의 기존 고객 재구매율은 무려 90%에 달했다. 쿠팡을 이용해본 소비자 10명 중 9명이 쿠팡을 다시 찾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얘기다. 티몬, 위메프가 ‘타임 커머스(일정 시간 내 폭탄 세일)’를 앞세우지만 쿠팡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 가격이 다소 저렴한 것보다는 상품을 빨리 받아볼 수 있는 것이 더 고객 니즈에 부합함을 시사한다.

바야흐로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이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자 너도나도 상품 배송과 서비스에 액셀을 밟고 있다.

경영학계에서는 본디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QCD(Quality, Cost, Delivery·품질, 비용, 전달)를 꼽았다. 품질이 우수하거나, 가격이 저렴하거나, 신속 정확한 전달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최근에는 배송(Delivery)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제품의 상향 평준화, 부품과 서비스의 범용화로 인해 품질과 비용을 통한 차별화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중론이다. ‘속도 경영’이 치열한 경쟁 속 차별화를 위한 기업의 마지막 결전의 장으로 주목받게 된 배경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속도전은 ‘빨리빨리’ 문화로 유명한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속도 경쟁 사회’ 저자인 황경석 전 LG전자 상무는 “고객에게 품질을 강조하다 보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든다. 장인 정신과 매뉴얼을 중시하는 일본은 그래도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반면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고객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품질 수준을 다소 양보하더라도 속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 TV가 브라운관에서 LCD로 바뀔 때 선제적으로 대응해 세계 시장을 선도한 삼성과 LG의 성공 사례도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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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는 AS 시간 단축을 위해 지난해 12월 ‘2인 전담 서비스’를 확대했다. 혼자서는 제품이 설치된 공간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제품이 크고 무거워 옮기기 어려웠지만, 2인이 투입되며 AS 시간이 평균 20%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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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생존에 목매는 기업들

▷로켓·제트·번쩍…늦으면 ‘끝장’

최근 속도전이 가장 치열한 곳은 단연 유통·물류업계다. ‘로켓배송’ ‘제트배송’ ‘치타배달’ ‘번쩍배달’ 등 듣기만 해도 숨 가쁜 용어들이 난무한다.

쿠팡은 로켓배송에 이어 최근 ‘제트배송(기존 ‘로켓제휴’에서 명칭 변경)’을 새롭게 내걸었다.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이 아닌, 제휴한 거래처 상품도 물류센터에 미리 보관해뒀다 주문이 들어오면 곧장 배송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다. 쿠팡이 지난 10년 가까이 물류망 구축에 투자, 전국 70%가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11㎞ 반경 안에 있어 30분 내 배송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쿠팡의 로켓배송 효과가 입증되자 경쟁업계도 앞다퉈 빠른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지분교환을 하고 ‘물류 관련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 쿠팡 따라잡기에 나섰다. 로켓배송처럼 전날 자정 전까지 주문하면 익일 도착을 보장하는 ‘내일 배송’은 물론, ‘지정일 배송’ ‘오늘 도착(당일 배송)’ 등 다양한 배송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쓱(SSG)닷컴도 당일 배송하는 쓱배송과 새벽배송을 앞세워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50% 이상 성장하고, 재주문 고객도 15% 늘었다. 쓱닷컴 관계자는 “이마트 점포 리뉴얼 일정에 맞춰 이마트에 대형 P.P(Picking & Packing) 센터와 온라인전용 센터를 구축, 2025년까지 일일 배송 가능 물량을 최대 36만여건까지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롯데하이마트 가전도 익일 배송이 기본이다. 전국 롯데하이마트 매장에서 밤 9시까지, 온라인쇼핑몰에서 평일 저녁 7시까지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부터 배송, 설치받을 수 있다.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주문 당일 설치까지 되는 ‘오늘 배송’ 서비스도 한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오프라인 매장에도 ‘오늘 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오후 1시 이전에 구매하면 당일 배송한다.

이 밖에도 11번가는 우정사업본부와 손잡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오늘주문 내일도착’ 서비스를 개시했다. 교보문고는 책을 온라인으로 주문 후 1시간 내 매장에서 수령받을 수 있는 ‘바로드림’ 서비스에 이어, 지난 2월부터는 ‘바로드림 오늘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오후 1시 이전 주문 시 오후 6시까지, 오후 6시 이전 주문 시 밤 12시까지 받을 수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바로드림 오늘배송을 이용해본 고객 5명 중 1명이 다시 이용할 정도로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외식업계에서는 배달앱 간 ‘단건 배달’이 새로운 게임의 룰이 됐다. 라이더가 한 번에 한 음식만 배달, 한 번에 여러 음식을 같이 배달하는 ‘묶음 배달’보다 최대 30분 이상 도착 시간을 단축했다.

단건 배달은 그간 쿠팡이츠만 채택했다. 그러나 단건 배달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며 쿠팡이츠 점유율이 급상승하자 배달의민족과 위메프오도 뛰어들었다. 배민은 오는 6월 단건 배달 시스템 ‘배민원(배민1)’을 선보이고, 위메프오는 음식 주문과 배달 라이더를 일대일로 매칭하는 시스템을 구축, 연내 관련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편의점도 빠른 배달 경쟁에 뛰어들었다. 편의점 자체가 오프라인 근거리 쇼핑 플랫폼이지만, 근거리조차 이동하기 귀찮거나 바쁜 소비자를 위해서다.

CU는 현재 전국 6000여 점포에서 도심 주요 지역과 읍·면 단위 지방 소도시에서까지 24시간 배달을 하고 있다. 2019년 4월 업계 최초로 시행한 지 1년 만에 도입 초기보다 10.4배나 이용 건수가 증가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소비가 확산되며 지난해보다 이용 건수가 30% 더 늘었다. 편의점 배달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가는 모습이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도 CU 배달 서비스 이용 건수가 4월 초기 도입 대비 3.3배 증가했다.

GS25는 지난해 8월 자체 도보 배달 서비스 ‘우리동네딜리버리(우딜)’가 히트를 쳤다. 당초 2021년 말까지 우친(우딜 배달원) 5만명 모집이 목표였는데 지난 7개월간 6만명 이상이 모집돼 목표를 벌써 초과 달성했다. 기대 이상 반응에 고무된 GS25는 우딜 서비스 영역 확대에 나섰다. 그간 GS25, GS더프레시 등 자사에서 발생한 주문 건만 배달하던 데서 나아가, 배달 범위를 3PL(Third Party Logistics·제3자 물류) 영역까지 넓힌다. 우친 모집 목표치도 연말까지 10만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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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주기를 단축하라

▷수개월 걸리던 입금, 당일 지급 ‘감동’

금융 시장에서는 고객의 자금 회전 속도를 줄여주는 ‘빠른정산’이 확산되고 있다. 기존에 수개월씩 걸리던 정산 주기를 수일에서 당일까지 줄여 급전이 필요한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중소상공인(SME)에게 배송완료 다음 날 담보나 수수료 없이 판매대금의 100%를 전액 조기 지급하는 ‘빠른정산’ 서비스를 선보였다.

유통업계에서는 그간 소비자가 구매확정 버튼을 누르거나 상품 배송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판매자에게 판매대금이 입금되는 관행이 있었다. 이 기간이 최대 2개월 이상 걸려 온라인 쇼핑 플랫폼 업체가 이자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쿠팡의 경우 이 같은 정산 시차를 이용해 거두는 이자수익이 월 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중소상공인의 자금 회전을 늦춰 ‘많이 팔릴수록 유동성이 악화된다’는 애로 사항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가 담보나 수수료 없이 판매대금의 100%를 배송완료 하루 만에 지급하는 것은 글로벌 이커머스업계 최초라는 평가다.

보험업계에서는 보험금 청구 후 지급 기간이 짧아지는 추세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전체 생명보험사의 평균 보험금 지급 기간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 1.54일로 집계됐다. 2019년 상반기 2.28일, 하반기 2.07일, 지난해 상반기 1.77일에서 계속 짧아진 결과다. 특히 라이나생명은 보험금 지급 기간이 0.89일로 가장 짧았다.

매경이코노미

스타벅스는 드라이브스루(DT)에 하이패스(자동 결제) 기능을 결합한 ‘My DT Pass’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이렌오더로 주문 후 My DT Pass를 통해 음료를 픽업하면, 진입해서 출차까지 최소 15초 만에 이용이 가능하다. <스타벅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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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시간을 줄여라

▷DT 이용 시간 15초로 확 줄인 스타벅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소비자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이 지상 과제로 떠올랐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회전율이 떨어지는 데다, 이에 실망한 소비자의 재방문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스타벅스는 드라이브스루(DT)에 하이패스(자동 결제) 기능을 결합한 ‘My DT Pass’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DT 매장에서 결제 과정 없이 바로 출차가 가능해지며 차량당 체류 시간이 30초에서 1분 이상 단축됐다. 사이렌오더로 주문 후 My DT Pass를 통해 음료를 픽업하면 20초 정도를 더 줄일 수 있다. 앞에 대기 고객이 없으면 진입해서 출차까지 최소 15초 만에 이용도 가능하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기준 My DT Pass 회원 수는 180만명에 달한다. DT 매장 차량 이용 고객 10명 중 4명은 My DT Pass를 이용한다”고 자랑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속도가 주요 경쟁 요소로 떠올랐다. 전기차의 주행 속도가 아닌, 충전 속도 경쟁이 치열하다.

테슬라가 전기차 급속 충전소 ‘슈퍼차저’ 확대에 나서자 현대차는 초고속 충전소 ‘E-pit’으로 맞불을 놨다. 지난 4월 15일부터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2곳에서 각 6기씩 총 72기를 설치,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한다. 앞서 열린 개소식에서는 신형 전기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가 배터리 용량 10%에서 최대 80%까지 충전되는 데 18분이 채 안 걸렸다. 출력량 기준 국내 최고 수준인 350㎾급 초고속 충전설비를 갖춘 덕분이다. 현대차는 올해 도심 주요 거점에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 8개소(48기)를 추가로 선보이고 충전 인프라를 지속 확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서점가에서는 신간 선출시 경쟁도 치열하다. 일례로 국내 대표 트렌드 전망서인 ‘트렌드 코리아’는 해마다 출간일이 앞당겨지고 있다. 해당 시리즈가 맨 처음 출간됐던 2008년에는 12월 15일 출간됐으나, 2014년 11월 10일, 지난해에는 10월 14일에 발간됐다. 연말에 쏟아지는 트렌드 전망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시장 선점 전략이다.

대리운전 시장에서는 대리기사의 빠른 지원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올랐다. 이후 15분 내 도착하는 타다의 대리운전 서비스 ‘바로대리’가 대표 사례다. 출발지가 강남, 서초, 송파이고 서울 시내를 도착지로 하는 호출에는 추가 비용 없이 바로대리가 자동 적용된다. 쏘카는 대리기사가 15분 내 도착하지 않을 경우 30%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30분 초과 시 3만원 한도 내에서 할인 적용 가능한 ‘타다대리’ 할인쿠폰도 지급한다.

이 같은 정책은 대리운전 이용 고객 상당수가 빠른 대리기사 도착을 선호하는 데 따른 결과다. 지난해 타다가 서울에 거주하는 자차 보유자 중 대리운전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리운전 이용 경험과 관련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리운전을 이용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으로 46.2%가 ‘호출 수락·대리기사 도착 지연’을 꼽은 것. 쏘카 관계자는 “바로대리 호출 수락률은 98~100%에 달한다. 호출부터 수락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초 미만으로 일반 호출보다 2배 이상 빠르다. 호출 후 15분 이내 출발지 도착에 성공한 비율은 3월 둘째 주 기준 97%다. 반응이 좋아 4월부터 강남, 서초에 이어 바로대리 서비스 지역을 송파구까지 확대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AS 시간 단축을 위해 지난해 12월 ‘2인 전담 서비스’ 확대에 나섰다. 그간 65인치 이상의 TV, 위아래로 설치된 건조기와 세탁기,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등에만 적용되던 2인 전담 서비스를 올해부터 60인치 이상의 TV, 대용량 스타일러, 워시타워, 안마의자, 4도어 냉장고 등에도 추가로 적용한 것. 현재 전국에 약 140개의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 측은 “혼자서는 제품이 설치된 공간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제품이 크고 무거워 옮기기 어려웠지만, 2인이 투입되며 AS 시간이 평균 20% 단축됐다”고 밝혔다.

화장품 업계도 속도가 중요하다. 화장품 성분의 빠르고 효과적인 피부 흡수를 위한 기술 경쟁이 한창이다.

한국콜마는 모공의 약 500분의 1 크기 입자로 화장품을 쪼개어 피부에 흡수시키는 초미세 마이크로 공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A브랜드의 화장품은 효능 성분의 빠른 흡수와 효과적인 전달력을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아 누적 판매 1억개를 돌파했다.

공기(工期)가 곧 비용과 직결되는 건설업계에서도 ‘빠른 납기’가 핵심 경쟁력이다. 최근에는 원가, 일정, 품질 관련 제반 사항을 사전 검증해 프로젝트가 계획에 따라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프리콘(시공 전 사전활동)’이 화두다.

일례로 국내 최대 규모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의 공기를 시공사는 36개월로 산정했으나 한미글로벌은 프리콘을 통해 33개월로 제안했다. 대규모 물량 공사임을 감안해 지하 터 파기 공사에서 일일 700대 이상 토사가 반출되도록 중장비를 투입하면서 공정을 중점 관리해 공사 기간을 2개월 단축했고, 기초 공사·지하층 공조 공사를 구역(Zone)별 세부 일정을 수립해 1개월 단축했다. 이를 통해 한미글로벌은 전체 공사비 예산을 사업 초기 예산보다 8.5%(약 504억원)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콘텐츠도 빨리빨리

▷감질나면 떠난다 ‘승-전-전-결’ 전개

콘텐츠 시장에서는 ‘빠른 전개’가 대세다. 인물 소개부터 배경 설명까지 조금씩 소개하던 플롯을 깨고 극 초반에 많은 설명을 할애하는 식이다.

웹소설의 경우 일반 소설의 ‘기-승-전-결’ 대신 ‘승-전-전-결’ 구조가 일반화됐다. 초반 배경 설명을 최대한 빠르게 갈무리하고 사건이 바로 전개되며 몰입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인물 간의 세밀한 갈등 묘사도 과감히 생략한다. 일례로 김영한 작가의 ‘열애수업’은 남녀 주인공이 10회 이내에 빠르게 만나, 감정 서사가 전개되거나 계약 결혼 관계 등이 정립된다.

소비자의 애타는 마음을 역이용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일본 웹툰업계를 평정한 픽코마의 성공 비결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는 역설적이게도 ‘기다리지 못하는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정해진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회차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음에도, 빠르게 다음 회차를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이 유료 결제에 나섰다. 덕분에 픽코마는 현재 일거래액 20억원,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바라보는 전 세계 1위 만화앱으로 우뚝 섰다.

게임업계에서도 속도감 있는 게임 전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모바일 게임 ‘발로란트’는 그간 한 게임에 약 30~40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잠깐의 짬(여유 시간)을 활용해 게임을 즐기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용자들의 의견이 빗발쳤다. 이에 라이엇게임즈는 한 게임에 8분 내외 짧은 시간이 걸리는 ‘에스컬레이션’ 게임 모드를 지난 2월 추가로 선보였다. 당초 기간 한정 모드로 제공할 예정이었으나, 이용자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현재까지 계속 제공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게임에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기보다는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니즈가 증가했다. 이에 발로란트 외에도 ‘리그 오브 레전드’ 중 ‘전략적 팀 전투’에서도 기존 40여분의 게임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신규 게임 모드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5호 (2021.04.21~2021.04.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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