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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outlook] 미얀마 임시정부, 소수민족과 연방군 추진…군부 꺾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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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경이 본 미얀마 정국

사망 700명 넘으며 내전 치달아

카친·카렌족 등 연방군 참여할듯

135개 민족이 모인 다민족국가

군부가 소수민족 탄압해 갈등

연방군이 군부에 승리한다면

74년 전 아웅산의 꿈 연방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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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족 반군 ‘카렌민족동맹’ 소속 병사들. 미얀마 중남부 카인 주와 카야 주의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이들은 군부 쿠데타에 반대해 반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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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로 헌정 중단 사태를 맞은 미얀마의 비상 상황이 8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700명 넘게 사망했고, 체포·구금·실종된 사람은 3000명을 넘어섰다.

과거 두 차례 쿠데타를 한 군부(반란군)는 쉽게 통치권을 잡으리라 기대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를 맛본 미얀마 국민의 저항은 예상외로 거세다. 해외로 탈출하거나 국내에 은신 중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세운 임시 정부 ‘연방정부대표위원회’(CRPH)가 지난 16일 아웅산 수지와 우윈민을 최고 지도부로 하는 ‘미얀마 연방공화국 국민통합정부’(국민통합정부) 를 출범시켰다. 국민통합정부는 “소수민족 무장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연방군 창설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군에는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 타앙민족해방군, 카친독립군, 카렌민족해방군 등이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카친 독립군과 카렌민족해방군은 이미 반란군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만약 연방군과 반란군 사이의 대규모 내전으로 치닫게 되면, 미얀마는 참혹한 살륙의 현장으로 변모하게 될 공산이 크다.

미얀마는 1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따라서 소수 민족간의 정치·역사적 역학 관계가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결정적 변수다. 이들 소수 민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 이후 지속적인 민족 갈등에 시달려 왔다.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6년 말부터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여러 개의 민족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려 했으나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 중심의 정치인들은 ‘하나의 버마’를 원했다. 아웅산 장군은 샨·카친 등 소수 민족 지도자들과 협상, ‘소수민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핵심으로 하는 역사적인 ‘팡롱 협정’을 체결하고, 영국으로부터 버마 연방 독립 약속을 받아낸다.

소수 민족과 군부, 갈등과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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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아웅산 수지 가 카렌민족동맹 지도자 무투세이 포와 만나 모든 반군 세력을 아우르는 ‘평화회의’ 결성을 논의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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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롱 협정은 미얀마 근세사의 위대한 사건이었다. 미얀마가 2월 12일을 ‘연방의 날’로 기념하는 이유다. 그러나 1947년 7월 아웅산이 암살된다. 이듬해 독립한 미얀마는 샨 주의 소왕국 국왕인 사오 쉐 타익이 초대 대통령, 아웅산의 동지였던 우 누가 초대 총리를 맡게 된다.

우 누는 12년 임기 동안, 소수 민족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소수 민족들의 불만이 터져나왔고, 카렌·샨 족 등은 무장투쟁에 나섰다. 우 누 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네윈은 1962년 3월 소수민족 반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해소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50년 가까이 미얀마 군부는 소수 민족을 연방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고, 군부의 존재와 군사독재를 합리화시켜 주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소수 민족과 군부와의 갈등과 대립이 미얀마 정정 불안의 불씨를 잉태해온 셈이다.

군사정부에 대항한 무장 투쟁은 샨·카렌·카친·라카인 족 등이 주도했다. 버마족 다음으로 큰 민족인 샨 족은 1947년 아웅산과 함께 팡롱 협정을 성사시킨 주역이었으나, 약속 위반을 이유로 일부 세력은 1958년 중반부터 정부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해왔다. 네윈의 군부는 샨주남부군,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 등 반군 소탕에 나섰는데, 태국과의 국경인 ‘황금의 삼각지대’에서 재배되는 아편 거래 이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란 얘기도 있다. 전설적인 마약왕 로싱한과 쿤사가 미얀마 군부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그의 자녀들은 미얀마 굴지의 재벌로 성장했다.

미얀마 중남부 산악지대를 본거지로 반정부 투쟁을 벌인 카렌족은 군부의 대대적 인종 청소로 인한 비극의 희생양이 됐다. 카친족 역시 2012년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2500여 명이 살해되고 10만 명 이상이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1988년 제2차 쿠데타 이후로도 군사 정부는 소수민족의 반군 거점을 초토화하는 전략을 써왔다. 그러자 아라칸군, 카친독립군,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 그리고 북부 샨 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타앙민족해방군은 2016년 11월 ‘북부동맹’을 결성해 정부군에 대항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집권한 아웅산 수지의 민주정부는 모든 반군 세력을 아우르는 평화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 ‘21세기 팡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협상은 2016년 8월에 시작되어 2019년까지 지속되었는데, 협상의 고비마다 군최고사령관 직을 걸머쥔 민 아웅 흘라잉의 군부는 크고 작은 무력 사용으로 판을 깨고는 했다.

미얀마 정국은 시계 제로상태

수지 여사는 올해 초, 재집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모든 정당과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국가적 평화 구축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 고 밝혔지만, 새로운 국회가 출범하는 2월 1일 새벽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는 연방의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 미얀마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상태다. 인원이나 무력에서 절대적으로 반란군 측이 우세하지만, 내전이 일어나면 승패를 속단할 수 없다. 반란군 내부의 자중지란 가능성도 있다. 반란군은 연방군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만약 내전에서 연방군이 승리하면, 1947년 아웅산이 구상했던 진정한 연방국가가 70여 년 만에 재탄생되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조용경

중앙일보

조용경


『뜻밖에 미얀마』의 저자. 서울대 법대 졸업후 포항제철에 입사,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을 지냈다. 2013년 미얀마를 방문한 게 계기가 돼 19차례에 걸쳐 14개 주를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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