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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석달새 180도 바뀐 위안부 판결… 정부, 日과 외교 셈법 더 복잡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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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일대로 꼬인 한일관계 파장 촉각

동아일보

정의연 등 “납득할 수 없는 판결” 피해자 측 이상희 변호사와 정의기억연대가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책임을 입법부와 행정부에 돌렸다”고 비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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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각하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해온 정부 내부에서는 “일단 한숨 돌릴 계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일본과의 교섭을 포함해 대내외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하며 외교 공백을 지적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판결이 적절했다”며 여전히 과거사 해법에 대해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해 우리 정부 외교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정부 내부 “한일 관계 일단 한숨 돌렸다”

외교부는 이날 판결 6시간 만에 “판결 관련 구체적 언급은 자제하고자 한다”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에서 스스로 표명한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현 정부는 일본에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합의이자 흠결이 있다며 사실상 배척해왔다. 한일 관계 복원을 시도한 올해부터 위안부 합의가 공식 합의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번에도 다시 거론한 것.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일본에 날을 세우지 않는 ‘로키’ 대응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부적으로는 일단 한일 관계에 악재가 더해지는 건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 외교 관계 측면에서는 (이번 판결로) 한숨 돌렸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 이후 외교장관 회담 등 한일 고위급 교류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다음 달 2,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담에서 한일 장관이 처음 대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장관은 일본 거부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취임 이후 두 달째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 日, 여전히 “한국이 해법 가져오라”

일본이 “한국이 과거사 해법을 가져오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점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2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일본 정부의 ‘주권면제’ 입장에 기초해 있다면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토 장관은 “옛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점에 변함없다”며 “일한(한일) 관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NHK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이번 판결이 ‘일한(한일) 관계에 플러스가 될지’ 묻자 “말도 안 된다. 일한 양국에는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징용 문제도 있다. 양국 관계는 원래 밑바닥에 가까운 마이너스 상태여서, 이번 판결로 플러스로 바뀔 리 없고, 아직 큰 마이너스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의 외교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도 1월과 이번의 상반된 판결을 바탕으로 일본과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을 근거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더욱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한의원연맹 소속 일본 현직 국회의원은 본보에 “한국 정부가 서로 상반된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대응책을 찾는지가 향후 일한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4년간 외교적 해결에 실패하면서 사법부에 기댄 피해자들이 두 번 고통받았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피해자들이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위안부 문제가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5년간의 희망고문이었다. 피해자들을 두 번 죽였다”고 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이 계속해서 허들을 높였고 한국은 일본의 태도에 지쳤다.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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