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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美 ‘플로이드 사건’ 유죄 평결… “다시 숨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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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목 짓눌러 숨지게 한 백인경찰

백인6명-유색6명 배심원 전원 “유죄”… 최고 75년형… 美언론, 40년형 전망

바이든 “인종주의-불평등에 맞서야”

사건 영상 제보한 10대 흑인소녀… “플로이드, 우리가 해냈어요” 페북 글

동아일보

“정의의 승리” 환호와 눈물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목조르기로 숨지게 한 전직 백인 경관 데릭 쇼빈의 유죄 평결 소식이 알려지자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왼쪽 사진). 고인의 동생 필로니스 씨가 평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미니애폴리스=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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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미국 북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당시 46세)를 목조르기로 숨지게 한 전직 백인 경찰 데릭 쇼빈(45)이 20일 배심원단 12명의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법원 밖 군중은 “정의가 실현됐다”며 환호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정의를 향한 큰 진전이지만 조직적인 인종주의와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인종차별 반대 시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를 촉발했다. 집권 내내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 및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3개 혐의 모두 유죄, 최장 75년형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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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양복을 입은 채 재판에 출석한 데릭 쇼빈 전 경관이 유죄 평결 직후 뒤로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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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등에 따르면 이날 배심원단은 쇼빈의 2급 살인, 3급 살인, 2급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각각 최대 40년, 25년,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어 산술적으로는 최대 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다만 이날 평결을 바탕으로 8주 후 판사가 형량을 선고할 때는 적은 형량이 예상된다. 미 언론은 약 40년의 징역형을 점치고 있다. 가장 위중한 혐의인 2급 살인은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지만 고의성이 있는 범죄를 뜻한다.

쇼빈은 담배 가게에서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로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의 목을 무릎으로 9분 29초간 짓눌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망 나흘 후 살인 혐의로 체포됐고 지난해 10월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이날 평결로 다시 구금됐다. 쇼빈은 “경찰 지침을 따랐으며 플로이드가 약물 과용 및 지병으로 숨졌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평결 직후 손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을 보여 항소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인의 남동생 필로니스 씨는 형이 사망 당시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절규했던 점을 상기시키듯 기자회견에서 “우리도 다시 숨쉴 수 있게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평결 전부터 “올바른 평결을 기대한다”고 했다. 평결 후 유족과의 통화에서 “안도했다”며 대통령 전용기를 보내 유족을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할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플로이드 사망 당시에도 유족과 만났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도 환영했다.

유죄 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은 백인 6명,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 6명이다. 성별로는 여성 7명, 남성 5명이다. 배심원단은 10시간에 걸친 심리 끝에 3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미국에서 경찰이 공권력 남용을 이유로, 특히 흑인을 상대로 한 과잉 진압으로 유죄를 받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는 점에서 미 흑인인권 운동이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 유색인종 인권운동에 한 획을 그은 평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백인 경찰이 흑인을 죽인 비슷한 사건 10여 건을 살펴본 결과 해당 경관이 유죄 선고를 받은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를 감안할 때 11일 역시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비무장 청년 단테 라이트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여성 경관 킴 포터 등 유사 사건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날 평결이 나오기 불과 25분 전 동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16세 흑인 소녀 마키야 브라이언트가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숨졌다. 경찰은 브라이언트가 칼을 들고 다른 이를 찌르려 하는 바람에 총을 쐈다고 밝혔다. 유족은 “경찰이 쏘기 전 칼을 버렸다”며 맞선다.

○ 10대 흑인 소녀의 동영상 촬영이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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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의 사망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흑인 여고생 다넬라 프레이저(18)도 주목받고 있다. 당시 과자를 사러 나섰던 그는 쇼빈이 플로이드의 목을 누르는 것을 보고 녹화를 시작했다. 약 10분간의 동영상에는 플로이드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검찰 역시 쇼빈 기소에 이 동영상을 주요 증거로 사용했다.

지난달 말 쇼빈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프레이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보며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내가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아 플로이드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 같아 괴롭다”며 울먹였다. 평결 직후 페이스북에 “펑펑 울었다. 정의가 실현됐다”며 “플로이드,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적었다. 한 소녀의 기지와 용기가 경찰의 과잉 진압을 멈추는 계기가 됐다는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평결 전 미 전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쇼빈이 유리한 평결을 받았을 때 미 전역에서 반발 시위가 일어날 공산이 컸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해 수도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는 경찰 및 방위군의 대비 태세가 강화됐다. 평결 후 워싱턴의 ‘BLM 광장’ 등 미 전역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유죄 평결을 반겼다. 일부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신아형·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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