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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피해자 무슨 죄" 납치하고 무차별 폭행까지…여성 노린 범죄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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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동 악마…길 가던 여성 납치해 사흘간 모텔 감금·성폭행" 靑 청원

혼자 있는 여성 골라 '커피 테러'한 30대 남성도…"사회 불만 컸다" 진술

전문가 "신체적 약자 배려하는 의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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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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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피해 여성들은 대체 무슨 죄입니까."


최근 여성을 납치해 사흘간 모텔에 감금한 뒤 강간하고 살해 협박을 한 이른바 '수유동 악마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 여성과 일면식이 없는 사이로, 처음 본 여성을 미리 잡아 둔 모텔방으로 끌고 가 감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여성 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며 여성 대상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전문가는 신체적 약자 등을 배려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길 가던 20대 여성을 납치해 3일간 모텔에 감금하고 성폭행한 20대 남성에게 엄벌을 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피해자 A씨의 친한 동생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A씨가 바람을 쐬러 잠시 밖에 나왔던 지난 4월10일 밤, 가해자는 한적한 곳에 있던 피해자를 납치해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 모텔로 끌고 가 청테이프로 포복해 3일간 감금하고 성폭행을 했다"며 "가해자는 미리 잡아 둔 모텔 방 장롱에 흉기를 모아두고 계획적으로 한적한 곳에 있는 A씨를 물색해 그 모텔방으로 납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는 A씨를 수차례 강간하고 '30분 안에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이 칼로 너를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고, A씨가 울며 이에 응하자 '3분 남았다. 아슬아슬했다'며 웃었다"고 전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가해자는 A씨의 부모에게 연락이 오자 A씨의 메신저 말투를 따라 해 그가 가출한 것처럼 위장했다. A씨가 부모와 통화할 때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A씨의 목에 흉기를 갖다 대 자신의 지시대로 말하도록 강요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목이 부러지고 심각한 외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원인은 "가해자가 A씨를 납치해 데리고 있을 때 자신이 여러 정신병이 있다고 했다"며 "이는 자신이 잡혔을 때 정신병으로 심신미약 및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려는 밑밥"이라고 주장했다.


일면식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5일 대구 도심 한 카페에서도 30대 남성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처음 본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이 남성은 피해 여성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양해 없이 가방을 치워 항의받았다. 이에 화가 난 남성은 갑자기 욕설을 하며 피해자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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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구 도심 한 카페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고 달아나 논란이 됐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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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 범죄를 당할지 몰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여성은 전체의 57.0%로 나타났다. 이는 남성(44.5%)에 비해 12.5%포인트 높은 수치다.


직장인 김모(27)씨는 "왜 '묻지마 범죄'는 항상 여성에게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례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라며 "결국 여자라 약해 보여서, 만만해 보여서 때린 거 아니겠나. 이런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여성혐오범죄'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정모(25)씨 또한 "최근 친구와 대화하며 걷고 있는데 술 취한 남성이 '시끄럽다'고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더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따지고 싶어도 되레 우리가 폭행당할까 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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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한 남성이 혼자 있는 여성만 골라 커피 등 음료를 뿌리거나 침을 뱉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제공=경남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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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밤중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경남 창원에서는 3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 등에 혼자 앉아 있는 여성만 골라 커피 등 음료를 뿌리거나 침을 뱉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지난 2월22일부터 3월23일까지 한밤중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홀로 있는 여성 15명에게 커피를 뿌리거나 침을 뱉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특히 이 남성은 여성 3명에게 바지를 내리고 신체 일부를 노출하는 등 음란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직장을 잃고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에 불만이 커지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자 여성들은 혼자 밤길을 걸을 때도 불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민 야간보행 안전도는 66.5%였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50.2%만이 밤에 혼자 걸을 때 안전하게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남성(83.1%)보다 33%포인트 낮은 수치다. 즉 여성 2명 중 1명은 야간 보행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28)씨는 "혼자 밤길을 걸을 때면 골목길이 아닌 큰길로 돌아간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골목길에 혼자 걸어가기 무섭더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신체적 약자 등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력범죄 피의자의 80%가 여성이다. 범죄자들은 신체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검거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라며 "사회적·신체적 약자들에 대한 범행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우선 배려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CCTV 등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범죄는 줄어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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