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갓갓’은 10대 피해자들에게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플랫 [n번방 그 후 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해 3~5월 한국사회는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에 대한 충격과 분노로 가득찼습니다. 국회는 n번방 방지법을, 법원은 디지털 성폭력을 엄하게 처벌하는 양형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주범인 조주빈(대화명 ‘박사’)은 1심에서 징역 45년, 문형욱(대화명 ‘갓갓’)은 징역 3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문형욱의 1심 판결문을 통해 이들의 범행 행태와 형량이 결정된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n번방 그 후②

징역 34년. n번방을 만든 ‘갓갓(대화명)’ 문형욱(25)에게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형사부(재판장 조순표)는 지난 8일 1심에서 이 같은 형을 선고했다. n번방은 조직화·체계화된 디지털 성범죄의 시초 격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성착취의 강도도 매우 셌다.

문씨의 1심 판결문을 확보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문씨는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판결문에 재판부의 판단이 많이 담겨있지는 않다. 문씨 범행의 행태와 형량이 결정된 배경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씨 범행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의 나이는 12~21세로 대부분이 여성인 아동·청소년이다. 피해자들의 나이 때문인지 문씨가 이들을 협박하면서 한 말의 상당수는 피해자들의 ‘부모’와 관련이 있었다. “너희 엄마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다 알고 있고, 신상도 다 알고 있으니 말을 안 들으면 엄마를 죽이거나 너에게 피해를 입히겠다.” “네 행동 하나에 엄마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네 집 아니까 사람 보낸다.” 문씨는 일단 부모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피해자에게 성착취물을 촬영해 보내게 하거나,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에 응하도록 지시했다.

일단 성착취물을 확보하면 그때부턴 성착취물을 유포하겠다며 협박을 이어갔다. 가깝게는 학교 친구나 부모, 멀게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공간에 무작위로 유포하겠다는 협박이었다. 영상이 온라인상에 한 번만 뿌려지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피해 회복이 힘든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을 잘 간파하고 적극 활용한 것이다. 문씨가 협박하면서 한 말이다. “인터넷에 한 번 올리면 삭제하기 힘든 거 아시죠? 사람들이 다운로드받아서 다른 곳 올리고 막 그래서.” 문씨는 사람들이 영상을 쉽게 검색할 수 있게끔 영상의 제목에 학교 이름이나, 반 번호 등을 적어 올리겠다고 피해자를 압박했다. 경찰을 사칭하거나, 개인정보를 빼돌리는 링크에 접속하게 하는 방법으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공포를 주면 피해자는 꼼짝 없이 문씨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문씨는 피해자와, 피해자를 직접 접촉할 남성에게 각각 연락해 자리를 주선했다. 공모자인 남성에게 문씨는 피해자를 ‘내 노예’라고 소개했다. 만날 장소와 어떤 행위를 할지까지 지정해줬다. 만날 장소는 학교나 학원 앞, 상가, 아파트 주차장 등 사람들이 흔히 오가는 곳들이었다. 아동·청소년이 범행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다음부터 이들을 주 범행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결문에 썼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문씨에게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 피해자는 견디다 못해 연락을 피했지만 문씨는 다른 사람을 통해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했다. 문씨의 협박 대상엔 피해자의 부모도 포함됐다. “니 딸이 자살한다고 해? 올려? 동네 다 소문내줘? 니 딸이 한 거?” “니 딸 일생이 부서져서 폐인이 된 딸 가지고 싶으면 니 맘대로 해. 난 올릴 테니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연루자들은 관련 사건 재판에서 문씨가 피해자들에게 요구한 성착취 내용은 이전과는 다른 수위의 것들이었다고 증언했다. 문씨와 조주빈은 성착취물 수위를 놓고 경쟁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지난해 한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갓갓(문씨)의 영상물은 칼로 (신체) 어디를 긁게 하거나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은데, 나중에 등장한 박사(조씨)는 모든 영상물 내용이 똑같다, 사람만 바뀌지 (무슨 행위를) 시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아서 기획을 했다”며 “사람을 만나는 것을 자극적으로 포장해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착취 주도는 문씨가 했지만 n번방 이용자들도 참여했다. 문씨가 제작하는 영상의 수위에 “사람들이 흥분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문씨는 메신저의 라이브 방송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성착취를 공유했다. 이용자들은 추가 영상을 요청했다. “길게 부탁드려요. 논스톱으로.” 요청을 받은 문씨는 피해자에게 영상을 촬영해 보내라고 지시하고, 영상을 받아 요청한 사람에게 전송해줬다.

문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1662개의 경우 ‘영리 목적’이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영리 목적 유포라고 판단해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문씨가 수익을 얻은 게 없고, 수사기관으로부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가를 받지 않았다는 진술 등을 감안했다. 성폭력처벌법상 단순 유포보다 영리 목적 유포가 형량이 높다. 문씨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건 (문화)상품권 90만원이 전부”라고 진술했다. 문화상품권은 n번방 입장료 명목이다. 재판부는 문씨로부터 90만원은 추징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징역 34년을 선택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만들어 지난 1월1일부터 시행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은 문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문씨는 지난해 기소됐는데 이때는 양형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의 효력은 시행 이후에 공소제기된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소급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결과적으로 형량은 양형기준상의 최대 형량(29년 3개월)보다 높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영구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왜곡된 성인식과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조장하는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큰 범행으로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포항여성회 등 여성·시민단체 연대 관계자 40여 명이 지난 4월 8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앞에서 ‘갓갓’ 문형욱 1심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문씨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서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또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보복적 감정 때문이라고 봤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노예 또는 게임 아이템 정도로 취급하며 변태적·가학적인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문씨가 초범이고, 스스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중형 선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디지털 성범죄 재판에서 이 같은 요인들이 반영돼 형량을 깎아주는 게 부당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자발찌 부착을 명할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문씨의 재범 위험성은 ‘중간’으로 평가됐다.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도구(K-SORAS)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중간’이라고 하더라도 재범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평가도구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재범 위험 요인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문씨가 출소하더라도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씨는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




이혜리 기자 lhr@khan.kr
탁지영 기자 g0g0@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 [인터랙티브] 김진숙을 만나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