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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유료인 미래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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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권택경 기자] 아이폰 사용자라면 iOS 14.5로 업데이트한 후 페이스북에서 생소한 화면을 하나 마주했을 거다. 페이스북이 사용자 데이터 수집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텐데, 그걸 부디 허용해주십사 하는 읍소에 가까운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이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에도 똑같은 화면이 뜬다. 이 구구절절한 내용을 아주 짧고, 와닿는 내용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계속 무료로 사용하고 싶습니까? 사용자 데이터 추적을 허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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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14.5로 업데이트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최신 버전을 실행하면 이런 화면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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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앱 추적 투명성'

페이스북은 왜 이런 메시지를 이용자들에게 보냈을까? 애플의 ‘앱 추적 투명성(App Tracking Transparency)' 정책 때문이다.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은 스마트폰 앱이나 웹사이트들이 과도하게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걸 막고, 그 수집 내용과 목적을 명확히 밝혀 사용자에게 동의를 받도록 한 정책이다.

날 따라다니는 듯한 광고 때문에 인터넷에서 감시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은가? 이게 가능한 이유가 웹사이트나 앱이 수집한 데이터로 내가 뭘 하고, 어디에 있고,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위치 정보, 검색 기록, 생활 습관 등 조각조각 난 정보들을 모으면 내가 어떤 소비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는 맞춤형 광고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이기 때문에 이걸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과 그걸 중개해주는 전문 브로커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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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앱 추적 투명성' 정책으로 과도한 개인 정보 수집과 활용에 제동을 걸었다 (출처=애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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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를 사고파는 게 돈이 되다 보니깐 내 개인 정보를 전혀 알 필요 없는 앱들도 내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건 맞춤 콘텐츠를 추천해주겠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메모 앱이나 타이머 앱이라면? 개인 정보를 팔아서 부수입을 올리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애플이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을 도입한 건 이런 상황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다. iOS 14.5 이상 버전을 사용하고 있다면 앱을 켤 때마다 ‘사용자 활동 추적을 허용하겠냐'는 창이 뜨며 사용자에게 추적을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한다. 추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앱 사용을 못 하게 하거나, 허용을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면 앱스토어에서 퇴출당한다.

페이스북, 진짜 '위기'일까, '엄살'일까?

페이스북이 유독 앱 추적 투명성 정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페이스북이 광고로 먹고사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페이스북 매출 262억 달러(약 29조 원) 중 97% 정도가 광고 매출이었다. 이용자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SNS니깐, 수집할 수 있는 개인정보도 풍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맞춤형 광고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은 아주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페이스북에게 앱 추적 투명성 정책은 눈엣가시와도 같다. 사용자들이 추적을 거부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수익 모델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유료화 가능성까지 암시하며 이용자들에게 추적을 허용해달라고 호소한 데에서 페이스북의 위기감을 엿볼 수 있다.

전 미 연방거래위원회 CTO이자 보안 전문가인 아쉬칸 솔타니는 개인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의 이러한 행보가 ‘겁주기 수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상황을 들여다보면 페이스북이 마냥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니다. 시장조사업체 플러리 애널리틱스가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250만 명 중 앱 추적에 동의했다고 밝힌 사용자는 4%에 불과했다. 전 세계로 넓혀보면 530만 명 중 11%였다. 미국 내 상황보다는 좀 낫지만, 낮은 비율인 건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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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출처=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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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수익이 토막난다면 결국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유료로 전환되는 게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페이스북 측이 이전부터 광고가 없는 유료 버전 페이스북도 고려하고 있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지난 2018년 4월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유료 버전 페이스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수익은 광고로 내고,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현재 형태가 이상적이기 때문에 유료 버전을 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페이스북이 생각하는 이상적 형태가 깨지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지 유료 버전을 출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인터넷의 미래가 걸린 물음

지금까지 얘기만 놓고 보면 얼핏 페이스북은 우리의 소중한 개인 정보를 긁어모아서 자기 배를 채우는 나쁜 기업이고, 애플은 그런 페이스북 마수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좋은 기업처럼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선악 대결과는 거리가 멀다.

페이스북은 이번 애플의 정책이 ‘무료 인터넷’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페이스북처럼 콘텐츠나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광고를 보여주는 형태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비용은 광고주가 대고 이용자는 대신 광고를 보니 엄밀히 말하면 ‘무료 인터넷'이 아니라 ‘광고 중심 인터넷'이다.

반면 애플이 그리는 미래는 ‘구독 중심 인터넷'이다. 콘텐츠나 서비스에 이용료를 지불하고 이용하는 인터넷 생태계로 가겠다는 거다. 앱스토어라는 거대 플랫폼을 운영하며 이용자들이 콘텐츠 제작자나 서비스 제공자에게 내는 이용료 일부를 수수료로 챙기는 애플 입장에서는 ‘구독 중심 인터넷’이 훨씬 더 이상적인 미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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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물음 (출처=애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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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가 자기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리느냐를 놓고 싸우는 주도권 싸움인 셈이다. 그러니 ‘추적을 허용하겠느냐?’는 애플의 물음을 이렇게 바꿔 볼 수도 있다. ‘당신이 꿈꾸는 인터넷의 형태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저들이 꿈꾸는 미래에 동의하는가?’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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