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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서소문 포럼] 중국의 인해전술 ‘키보드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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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여론전 초강대국 중국

우마오당 의혹 지구촌 공론화

알고 방치하면 ‘온라인 이완용’

중앙일보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2020년 미국 대선 때 러시아는 끈질기게 미국 내 온라인 여론조작을 시도했지만 특이하게도 중국은 조용했다. 지난달 14일 서소문포럼을 통해 소개했던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2020 선거 해외 위협 보고서’에 나오는 정보 분석 결과다.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되건 ‘반(反)중국’이었기 때문에 중국이 잠잠했다고 미 정보당국은 판단했다. 단 ‘조용한 중국’은 대단히 특이한 경우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만큼이나 위협적인 온라인 선전선동술을 구사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발 온라인 여론조작 위협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된 지 오래다. 이른바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리는 댓글 부대가 중국 정부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중국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대대적인 댓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됐다. 우마오당은 이들이 댓글을 쓸 때마다 5마오(五毛·약 85원)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며 붙여진 이름이다.

#하버드대 게리 킹 연구진은 2017년 연구 보고서에서 이른바 “50센트당(50c party, 우마오당의 영어식 표현)은 매년 전국적으로 4억 4800만 개의 소셜미디어 글(post)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중 절반은 정부 사이트에 오르고 나머지 절반 2억여 개는 실시간으로 민간 사이트에 스며든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의 전략은 당과 정부를 믿지 않는 이들과 논쟁하기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의제를 바꾸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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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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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지난 3월 중국이 인터넷을 감시하고 여론에 개입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동원하고 있으며, 이들은 50센트당으로 불린다고 보도했다. BBC가 ‘키보드 군단(Keyboard Army)’로 묘사했던 이들의 목표는 ‘해외에서 공격적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이 영어로 트윗을 올리는 이유는 당연히 서구의 국민을 겨냥해서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19년 3월 발표한 ‘새로운 국제 미디어 질서를 향한 중국의 시도’ 보고서에서 2018년 일본에서 근무하던 대만 외교관의 자살을 전했다. 그해 9월 태풍 제비가 일본을 강타하며 간사이 국제공항이 침수됐다. 그런데 대만에선 “대만 관광객이 공항에 고립돼 있는데 일본 내 대만 외교관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고 결국 대만인들은 중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공항을 빠져나왔다”는 뉴스가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대만 여론은 들끓었고, 대만 오사카경제문화사무처(오사카 영사관 역할)의 담당 외교관이 자살했다.

그러나 RSF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인을 구했다’는 소식은 가짜 뉴스였다. 대만인들을 대피시킨 건 중국 대사관이 아니라 일본 당국이었다. RSF는 “베이징이 최초의 가짜 뉴스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중국을 진원지로 지목했다. 대만 당국에 따르면 이 가짜 뉴스는 처음에 중국 본토의 인터넷에서 만들어졌다가,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 웹사이트에 오르고, 이어 대만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다가 대만 언론들이 팩트체크 없이 보도했다. RSF는 “대만을 겨냥한 베이징의 수십 년간의 정보조작 캠페인의 목표는 대만 정부를 약화해 미래의 통일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펴낸 ‘2019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는 외국 정부에 의한 가짜 정보도 있다. 보고서는 조사 대상국 중 가장 심각하게 이같은 위협을 받는 나라로 대만과 라트비아 2개국을 지목했다. 보고서는 “중국은 허위 정보나 오도하는 정보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뿌리고 있으며 그 주된 타깃 중 하나가 대만”이라고 밝혔다.

중국 내 여론조작 조직의 이름이 실제로 우마오당인지, 이들이 정말 90마오를 받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건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 각국을 상대로 디지털 여론전에 나서고 있는 건 분명하다.

#과거 국정원이 댓글부대를 운영해 된서리를 맞았다. 그런데 중국발 댓글부대의 위협엔 정보당국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북한만 아니라 제3국 댓글부대를 은밀히 역추적해 상대의 디지털 선전선동 수법과 네트워크를 파악해 감시하고 있는 지가 궁금하다. 정보당국이 댓글부대를 운영한 건 정치 개입죄이자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그런데 해외발 댓글부대의 국내 여론조작 시도에 무지하거나 혹여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면 그 해악은 국내용 댓글부대 운용을 뛰어넘는다. 민족의 자주를 팔아먹는 ‘온라인 시대의 이완용’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국내 정치적 이해 관계가 안보 영역으로 침투한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없으리라 믿지만 말이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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