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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가영 논설위원이 간다]“장관은 빼야” vs “장관도 임명동의 투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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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론 대두되는 인사청문회, 전문가들 의견 들어보니

문 정부,보고서 채택 무시 관행화

인사권 견제 의미 사라진 지 오래

‘무용론’ 속 “대통령 의지 중요”

협치 뜻 없으면 제도 있어도 무의미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마치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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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박준영 해양수산부ㆍ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14일까지 재송부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1차 시한이던 10일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인사검증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할 때부터 이미 예상된 일이다. 문 대통령은 현 인사청문회을 ‘무안주기식’이라고 규정하며 ^도덕성 검증의 비공개 청문회 ^정책 검증의 공개 청문회로 나눠서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3명의 후보자를 모두 임명할지는 14일 이후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10일의 특별연설에 이은 재송부 요청에서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를 불신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금껏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거나 여당이 단독으로 채택했음에도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인사는 모두 29명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사례는 21건, 박근혜 정부 때는 13건이었다.(국회 입법조사처) 그러다보니 현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만큼 ‘대통령의 지명=임명’이란 공식은 더욱 힘을 받는 상황이다. 2000년 개혁의 상징으로 도입된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 수명을 다한 걸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장관 임명, 대통령에 일임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처음 인사청문회가 도입될 때 그 대상은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거나 국회가 선출하는 23개 공직에 한정됐다.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재 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등이다. 그러다 이후 꾸준히 법이 개정되며 현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까지 총 66명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부터 대상자가 됐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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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인사청문 대상 공직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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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상황에 대해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등 헌법에서 임명동의를 규정한 직 외에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과 한 팀을 이뤄 일하는 장관을 굳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에 대한 검증은 언론과 야당이 하고 그 결과를 임명에 반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장관 임명의 전권을 주자는 말이다. 강 교수는 “인사청문회가 여러 장점을 지녔지만 현재처럼 국회가 반대해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신상털기식 청문회가 장관 리더십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한 지금이 법 개정의 적기"라고 제안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도 “인사청문회는 입법부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만큼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보고서 채택 여부는 무시된 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가 교수는 미국 상원의 인준 비토권도 언급했다. 그는 “지금처럼 국회가 어떤 결정을 하든 대통령의 임명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인사청문회는 무용지물이 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장관직에 대해서도 임명동의 투표를 하고, 찬반의 기록을 남기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의지에 따라 좋은 결과”

하지만 어렵사리 도입한 인사청문회를 폐지하는 건 반개혁적이며 우리 정치나 사회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물론 이런 주장의 근저에도 현재처럼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일방통행하거나 국민이 동의하기 어려운 후보자를 내세우고 동의를 강요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최준영 인하대 교수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는 개혁적 의미에서 도입된 인사청문회의 폐지는 섣부르다"며 "그러나 현재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건 대통령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과거에도 자신이 지명한 후보에 대해 ‘청문회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식으로 방기하는 대통령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국회 탓을 하지만 그 역시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처럼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소개하며 동의를 구하는 상황을 기대하는 게 그렇게 무리한가. 임혜숙 후보자에 대해서도 야당과 언론에 불만을 나타냈지만 정작 임 후보자가 왜 꼭 그 자리에 앉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를 가리켜 ‘청와대 정부’라 한다. 청와대가 모든 걸 다 알아서 하니 장관은 청문회에서 어떤 지적을 받는 사람도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고위공직자를 검증한다는 인사청문회의 확실한 순기능이 있는만큼 없애선 안된다"며 "결국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데 그 키는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번 인사에서도 두 명의 장관은 순조롭게 청문회를 거쳐 임명이 됐다"며 "야당과 언론의 지적이 국민의 반감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후보자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반감으로 ‘파렴치함과 상습성’을 꼽았다. 위장전입 등에선 국민이 어느 정도 이해할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 때의 전방위적인 특혜 시리즈, 임혜숙ㆍ박준영 후보자에서 드러난 ‘파렴치적 행태’는 도저히 수용이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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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숙 박준영 노형욱 후보자 인사청문회 의혹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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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라도 협치 노력 중요”

이들은 인사청문회를 없애든, 계속 지속하든 간에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한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최준영 교수는 “법이나 제도 보다는 역시 관행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특히 많이 한다”며 “인사청문회를 대하는 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지만 반대 의견을 조금도 관용의 뜻이 없는 대통령의 마음에도 문제가 있다. 서로간에 존중하는 정치문화,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마음의 습관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조진만 교수는 “대통령과 여당이 결국 중요하다. 야당의 반대는 힘으로 관철시키겠다는 생각은 협치와는 정반대"라며 "서로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인사청문회를 제대로 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관에 대한 검증은 인사청문회와 그 이전이 아니라 임명된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택 교수는 “영국 같은 나라는 장관이 출장 다녀온 뒤 꼼꼼히 모든 영수증을 공개하고 검증을 받는다. 우리는 청문회 때까지 떠들다 이후엔 정치 공방하기 바쁘지 장관이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인사청문회의 존폐를 고민하기에 앞서 일상적인 고위공직자 검증 시스템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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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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