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매경이코노미스트] '선택적' 지속가능성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현세대를 위한 경제개발로 후대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속가능성장(sustainable development)'은 인기 있는 구호다. 인간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지구환경을 훼손하는지, 그래서 현세대의 경제활동을 어느 정도 제약하는 것이 세대 간 부담의 적절한 배분인지 등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성장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지속가능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원자력 대신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을 위해 대규모 재원을 투입해 오고 있으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P4G 정상회의도 개최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의 추구는 환경문제 이외에도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폭넓게 권고되어 온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세대 간 부담 배분이 가장 강조되는 분야는 재정이다. 현세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적자는 결국 후대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속가능성장의 기치 이면에서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재정확대 정책은 퍽이나 어색하다.

현 정부 출범 초부터 급속히 추진되어 온 복지확충과 공무원 증원은 항구적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후대의 삶에 부담이 될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로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또다시 추진되고 있는 추경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경제가 어려워서 세수가 줄어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출을 늘려야 하고, 경제가 회복되면서 세수가 늘어나면 늘어난 세수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또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이없다. 무엇보다도 세대 간 부담 배분 문제의 결정판인 연금재정에 대한 개혁 논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은, 현 정부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나타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후대의 삶을 보듬기 위한 '지속가능성'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두고 환경과 재정에 대해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존재가 희미해진 소득주도성장, 수년을 지속시키지 못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생명력이 수개월에 불과했던 부동산 대책 등을 상기시키면서, 경제에 대한 식견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부동산 대책 등은 몰라도 재정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굳이 복잡한 시장원리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 현재의 연금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입출금을 계산하는 엑셀작업만으로도 알 수 있다. 경제활동과 탄소배출 그리고 지구온난화 간에 얽힌 복잡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고차원적 이론과 검증도 필요하지 않다. 그 피해가 언제 얼마나 나타날지 불확실한 기후문제와 달리, 연금고갈은 바로 우리 다음 세대에서 현실화될 문제라는 점도 명확하다. 국제공조 없이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환경보전과 달리 후대의 빚 굴레 여부는 온전히 우리의 책임하에 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이해된다.

그래서 점점 선배의 충고에 마음이 간다. 어차피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데, 그 안에서 무슨 논리적 정합성을 찾으려 하느냐는 것이다. 환경문제는 환경단체의 정치적 입김이 커서 정책화되는 것이고, 재정개혁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어 공론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 명쾌해서 반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정부 정책의 골간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것 같아 찜찜하다. 혹시 남은 임기 중에 신뢰할 만한 재정건전성 회복 방안을 마련하여 지속가능성장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가능성은 없을까? 선배에게 또 한소리 들을 것 같기는 하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