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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세금 낭비하는 ‘장롱 특허’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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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R&D 투자 불구 창업 연결 안 돼

쪼개기 지원, 건수로 평가 관행 버려야

중앙일보

이스라엘 히브리대 안에는 '모빌아이' 등 이 대학이 낳은 주요 창업 성과들이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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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하는 나라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 비율이 4.53%로, 이스라엘(4.94%)과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툰다. 두 나라 정부 모두 R&D 사업에 정성을 쏟지만 한국은 이스라엘만큼 투입 대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문제다.

이스라엘은 혁신청의 스타트업 R&D 비용 지원에 힘입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 ‘창업 국가’로 거듭났다. 인텔이 2017년 154억 달러(약 18조원 3000억원)에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비롯해 수천 개의 R&D 기반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고, 이 가운데 이미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거나 미국 증시에 상장한 업체도 상당수다.

이에 비해 한국은 내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R&D가 혁신 창업으로 이어지기는커녕 기업 활동에 활용되는 빈도조차 낮다. GDP 1000억 달러 대비 특허출원 건수(7779건)는 세계 1위로, 외형만 보면 2위인 중국(5520건)을 한참 앞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정부 R&D 사업비의 70%가 집중되는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특허 활용률이 33.7%에 불과하다. 우리 기업은 특허 열 개를 내면 이 가운데 아홉 개(활용률 90.9%)를 활용하는데, 재정이 투입되는 대학·출연연의 특허는 열이면 일곱은 실제 기업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른바 ‘장롱 특허’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정부 지원 사업 예산이 쓰일 때마다 세금 낭비 논란으로 시끄러운 이유다.

여기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지원받는 대학과 출연연은 우선 관련 공무원들의 비전문성, 그리고 다양한 행정규제를 문제 삼는다. 미국의 신속한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이 잘 보여주듯, 꼭 필요한 연구라고 판단하면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을 동원해 거액의 돈을 적기에 지원해 성과를 낸다. 반면에 한국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의 면피용 쪼개기 지원, 다시 말해 근시안적인 일회성 지원을 남발해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교수 겸직 제한 규정(하루 8시간)을 비롯해 시대에 뒤떨어진 각종 규제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대학과 연구기관 내에서도 건수 채우기에 급급한 무의미한 연구가 난무하고 있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대로 연구하는 연구진보다 정치권 등에 인맥 좋은 사람만 연구비를 타간다는 소문도 잦아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정부 R&D 사업을 놓고 ‘고상하게 세금 빼먹기’라거나 ‘국가 돈은 눈먼 돈’이라는 조롱이 나올까.

정부는 이제라도 혈세 낭비가 없도록 R&D 지원 시스템을 정비해 꼭 필요한 연구에 지원하기 바란다. 그래야 투자 대비 성과가 낮은 ‘코리아 R&D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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