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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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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석학 길희성 교수 "영적 휴머니스트, 예수외 3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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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78) 명예교수가 최근 책을 냈다. 서문에서 그는 “나의 학문 인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저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비장’하고 무거운 심정으로 썼다”고 밝혔다. 922쪽, 두툼한 책의 제목은 『영적 휴머니즘』이다.

실제 그랬다. 어찌 보면 ‘마지막 고백’ 같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 자리를 내놓고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갔을 만큼, 그는 좋아하는 종교학을 한평생 파고들며 살았다. 그 길의 후반부에서 길 교수가 내리는 마지막 고백과 결론은 어떤 걸까. 23일 강화도의 심도학사(尋道學舍)에서 그를 교수를 만났다. 길희성 교수에게 ‘나의 삶과 종교’를 물었다.

중앙일보

길희성 교수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철학을 먼저 공부했다. 신학의 경직된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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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젊었을 때 신앙은?

A : “집안이 개신교였다. 외조부는 목사님이었다. 황해도였던 외가에 교회 장로도 여럿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랐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지 않더라.”

Q : 왜 생동감이 없었나.

A : “무언가 답답했다. 전통적 신학의 틀이 왠지 갑갑했다. 그때 부목사로 오신 홍동근 목사님이 물꼬를 터줬다. 그분은 카를 마르크스 이야기도 하고, 사회정의도 이야기했다. 성경 해석도 자유롭고 진보적이었다. 나는 거기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신학을 하기 위해서 철학과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당시 홍 목사님과 주위 여러분의 조언이 그랬다. 신학을 하려면 철학을 먼저 하라고 했다. 그건 신학의 경직된 울타리 안에 갇히지 말라는 충고였다.”

Q : 그 조언, 지금 돌아보면 어땠나.

A : “결국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입학하던 시절, 철학과에는 논리실증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 언어 분석적인 메타 윤리학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거기에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등 삶에 대한 큰 물음이 빠져있었다. 대신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심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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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플라톤 철학을 통해 사물에는 본질이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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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무엇을 찾았나.

A : “플라톤은 본질주의자다. 사물에는 본질이 있다. 책이라면 책의 본질이 있고, 대학에는 대학의 이념이 있다. 그게 본질이다. 나는 플라톤의 개념 철학, 본질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나의 기독교 신앙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향점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거다. 이건 지금까지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진리다.”

길 교수는 학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예일대 대학원 신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3년간 신학 공부를 했다. 석사 과정이었다. 당연히 박사 학위도 신학으로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심적인 변화가 생겼다. 뜻밖에도 그는 하버드대 비교종교학과에서 불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Q : 크게 방향을 바꾸었다. 심적인 변화는 무엇이었나.

A : “예일대에서 공부하며 깨달았다. 서양 사람들은 데카르트나 칸트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그들의 사고가 철학적이구나. 동양 사람들은 공자와 노자를 공부하지 않아도 사고의 밑바탕에는 동양철학이 흐르는구나. 특히 와인슈타인 교수의 학부 불교사 강의를 수강하면서 불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를 하게 됐다. 나는 기독교가 세계 종교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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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심도학사의 뜰에 선 길희성 교수는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며 기독교 신학을 넘어서서 세계종교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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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하버드 대학에는 켄트웰 스미스 교수라는 세계 종교학의 거장이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슬람학에 정통했다. “그분의 세계 종교사를 보는 눈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미스 교수의 학부 강의 조교도 했다. “그때 나는 이슬람과 유일신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다. 기독교 신학을 넘어서서 세계 종교를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Q : 켄트웰 교수의 안목 중 가장 놀라웠던 대목은 뭔가.

A : “그분은 세계 5대 종교를 이렇게 꼽았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마르크시즘, 세속적 휴머니즘(Secular humanism). 그는 마르크시즘과 세속적 휴머니즘도 하나의 종교로 봤다. 이런 견해에 나는 깜짝 놀랐다. 종교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건 궁극적 삶의 의미와 토대에 관한 인간의 모든 게 종교적이라는 깊은 통찰이었다.”

Q : 세속적 휴머니즘이 뭔가.

A : “인간은 인간이란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이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 있는 존재다. 종교적 차별마저 넘어서는 휴머니즘이다. 서구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비판을 받았고, 그 결과 인간의 이성과 윤리에 중심을 두는 탈 종교화한 휴머니즘이 생겨났다. 그게 세속적 휴머니즘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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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지금 세속적 휴머니즘은 위선과 구호의 탈을 쓰고 있다. 거기에만 의존하면 삶의 토대가 공허해진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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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떤 문제인가.

A : “세속적 휴머니즘에만 머물면 삶의 의미, 삶의 토대가 공허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세속적 휴머니즘이 아니라 영적 휴머니즘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Q : 영적 휴머니즘, 그 핵심은 뭔가.

A : “데카르트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고, 세계는 물질과 정신으로 돼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세계를 이분법으로 쪼개고 대립적으로 봤다. 기독교를 위시한 유일신 신앙의 종교들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을 극복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Q : 유일신 신앙의 이분법은 어떤 건가.

A : “신을 초자연적 존재로만 본다. 그래서 초자연과 자연이 대립한다. 신과 인간, 성(聖)과 속(俗)이 이원적으로 대립한다. 게다가 자신들처럼 그걸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 다른 종교를 범신론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유일신 신앙의 배타성이 나온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걸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Q :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A : “둘로 쪼개져 있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유일신 신앙이 살 수 있다. 그걸 나는 ‘포월적 신관(包越的 神觀)’이라 부른다. ‘포월’은 감싸면서 초월한다는 뜻이다. 만물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한다. 자연적 초자연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종교 전통들에는 이런 안목을 갖고 살았던 영적 휴머니스트들이 실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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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신앙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만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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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긴 길 교수는 네 명의 영적 휴머니스트를 꼽았다. 예수와 중세의 수도자이자 신학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 중국 선불교의 임제 선사(?~867)와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98)이다. 그는 먼저 예수를 꼽았다.

“예수는 말과 행동으로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대변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하늘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 닮았다고 하여,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예수는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Q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어땠나.

A : “그런 예수를 알아보고 가감 없이 말했던 신학자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예수는 하느님의 외아들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입양된 양자라고 말한다. 독생자는 예수님뿐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이런 장애를 완전히 넘어서신 분이었다.”

Q : 에크하르트는 뭐라고 했나.

A : “예수와 우리가 모두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고 했다. 에크하르트는 그사이에 한 치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유일한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의 공고한 신학적 장벽과 교리의 장벽을 속 시원하게 돌파해 허물어 버린 수도자이자 신비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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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의 뜰을 거닐던 길희성 교수는 "인류의 종교전통에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어 살았던 영적 휴머니스트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뒤에 심도학사 근처에 있는 교회 수도원의 십자가가 보인다.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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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임제 선사와 해월 최시형은 왜 영적 휴머니스트인가.

A :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ㆍ다다른 곳마다 주인이 돼라,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을 강조한 임제 선사는 참다운 인간의 주체성을 거침없이 설했다. 또 사인여천(事人如天ㆍ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다)을 주창한 해월 최시형은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했다고 말하라’고 할만큼 영적 휴머니스트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심도학사 진입로까지 배웅을 나온 길 교수가 맑은 눈으로 말했다.

“영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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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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